활동가 인터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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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더 시끌시끌 했으면 좋겠어요 - 다산인권센터의 사월 활동가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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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운동을 오래한 활동가에게 인터뷰 제안을 했다. “활동 경력이 많은 사람은 인터뷰를 많이 했을 테고, 노출도 많이 되었다. 이왕이면 젊은 활동가를 인터뷰 하는 게 어떻겠냐”면서 본인 대신 “다른 활동가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아차, 싶었다. 나도 그의 말에 동의한다. 며칠 후, ‘다산인권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월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산인권센터’는 수원에 있다. 사월을 만나기 위해 수원으로 가려고 했으나, 퇴근 후 수원까지 가기엔 시간이 넉넉지 않았다. 사월과 상의 후 서울과 수원의 중간지점인 영등포에서 보기로 했다. 7월 1일 오후 7시, 영등포역 인근 ‘카페 봄봄’에서 사월(沙月)을 만났다. 

** 카페 봄봄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사월


“중·고등학교 때 공부를 별로 안 했어요. 어머니는 ‘공부는 안 해도 좋으니까  신문 맨 뒷장 앞면에 보면 ‘사설’이 있다. 그것만은 꼭 읽어라’고 하셨어요. 공부도 안 하는데 신문 읽으라는 말까지 반항하기엔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어요. 그때부터 사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까만 건 글씨요, 하얀 건 종이다’라고 생각하며 봤어요. 읽다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됐어요.

2008년에 광우병 때문에 촛불집회를 했잖아요. 그때, 어머니가 ㅇㅇ일보, ㅇㅇ신문을 보라고 했어요. 같은 사건을 다루는데 두 신문의 내용이 달랐어요. ‘이건 뭐지?’ 했죠. 어머니한테 여쭤봤더니 ‘네가 찾아봐’라고 하셨어요. 뉴스를 보니까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었어요. 저도 집회에 가고 싶어서 친구들에게 같이 가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공부한다고 안 간대요. 결국 저 혼자 갔어요.”


신문의 사설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다. 왜 신문사마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보도할까. 티브이에서 촛불집회 장면을 보고, ‘집회에 참석한 저 사람들은 왜 화가 났을까? 구호는 미리 연습하고 외치는 걸까?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지?’ 궁금한 게 많았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민주주의’란 단어로 검색을 했다. 첫 번째로 발견한 곳이 ‘참여연대’였다. 사는 곳이 경기도였기에 경기도에 있는 단체를 찾았더니 ‘다산인권센터’가 나왔다. 그렇게 사월은 다산인권센터와 인연을 맺는다. 


활동경험이 쌓여도 갈증이 생겨


“결국 저도 대학에 갔어요. 하지만 1학년까지 겨우 다니고 2학년을 마치기 전에 그만뒀어요. 메이크업을 전공했거든요. 그만두고 관련된 일을 조금 했어요.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거나 배우들 프로필 사진 찍을 때 메이크업 해주는 일을 했어요. 그런데 현장에 가면 뭔가 불편했어요. 여성을 보는 시선과 여성을 대하는 태도가 제가 생각하는 것과 달랐어요. 그 후로 여성단체에서 자원활동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발견한 다산인권센터를 다시 찾아보니 수원에 있었어요. 지역운동을 하는 게 매력적이었어요. 활동가가 되기로 했어요.  

다산에서는 2016년 7월부터 활동했어요. 처음에는 ‘딱 3년 동안만 잘 버티자’고 다짐했어요. 이곳 경기도는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요. 이주민 공동대책위가 있어서 문제가 생기면 그분들을 만나서 대응해요. 살면서 한 번도 이주민을 직접 만난 적이 없었는데 다산에서 활동하면서 미등록 이주민들을 많이 만났어요. 사업주가 그분들을 대하는 태도는 너무 폭력적이었어요. 농촌에서 천막치고 일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천막은 집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싸웠어요.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는 운동을 하면서 법 개정하고 그랬어요. 그다음엔 사업주가 컨테이너에서 살래요.  이주민들의 인권 침해가 너무 심각해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게 재미는 있는데 지금은 좀 지치고 갈증이 생겼어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있고. 다산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중에 제가 제일 활동 경험이 적어요. 오래 일한 사람들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발 빠르게 대응하는데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한 활동가처럼 감각을 기를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있고요.”


** 2018년, 이주노동자 투쟁투어버스 현장에서 기자회견 하는 사월


활동 5년 차가 되는 사월은 아직도 자신의 활동이 미덥지 않다. 어떻게 하면 선배들처럼 기민하게 대처하는 감각이 생길까가 늘 고민이다. 


“저는 지금 전략조직팀에서 대중 조직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지역별, 영역별 간담회를 하고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있어요. 경기도에서는 인권 조례를 제정할 때, 성적 지향이 들어간다는 이유로 반대했어요. 이 문제 때문에 지역 단체들이랑  어떻게 하면 인권 조례를 재개정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여기도 사람이 모인 곳이니까 갈등이나 충돌이 아주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고요(웃음). 갈등을 잘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조직이에요. 아침에 오면 인사만 하고 바로 자기 일을 하는데 그러지 말고 단 10분이라도 차 마시면서 얘기하는 시간을 갖자고 했어요. 요새 실천하고 있어요. 

최근에 3년에서 5년 이하의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서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했어요. 이명박근혜 때는 수원이 촛불집회를 제일 오랫동안 했거든요. 촛불 들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촛불이 없어지니까 활동가를 만나기가 어려워요. 워크숍에서 ‘평등한 조직, 평등한 지역 운동은 어떻게 만들까’라는 고민을 나누고 약속문을 만들었어요. 이것을 선언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노력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활동가들을 만나서 함께 토론하고 격려하면서 많이 배웠어요.  

작년에 ‘인권재단 사람’에서 ‘지속가능한 활동을 위한 인권활동가 설문조사’를 했어요. 나중에 보고회를 했는데 제가 인터뷰를 했어요. “내가 활동기간이 짧아서인지 같이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이 필요하다,  궁금한 거 질문하면 답해줄 사람도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다산에 처음 왔을때,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서 ‘이럴 때는 어떻게 할까?’하고 물어보는 걸 봤어요.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왜냐하면 운동은 혼자하는 게 아니니까요. 동료 활동가와 관계를 잘 만드는 일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이 활동에 애정이 더 생긴 것 같아요.”


인터뷰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지났을까. 사월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는 활동가였다. 특히, 노는 일에는 안 빠진다고 했다. ‘나도 사월과 같은 취향’이라고 하자 거침없이 이야기를 쏟아냈다. 


“인권운동했던 선배들은 현장에 계속 있었으니까 자신들의 경험을 많이 들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잘못하면 ‘꼰대’가 될 수 있지만 활동 경력, 연차 이런 거 상관없이 어떤 방식으로 운동을 해왔고 운동할 때 무슨 고민을 했는지를 얘기해 주면 후배들은 용기가 생겨요. 고민이 해결될 때도 있고요. 저는 큰 그림을 못 그려서 부족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오래된 활동가들은 기획을 하거나 큰 그림을 그릴때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금방 캐치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들을 같이 공유하고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선배 활동가들이 건강에 더 신경썼으면 좋겠어요. 작년, 재작년부터 몸이 안 좋은 활동가가 있다는 말을 종종 들었거든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월은 자신의 활동이 더 풍부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다. 선배들이 경험을 더 많이 공유해 줬으면 했고, 건강을 잘 돌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선배들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월의 따뜻한 마음이 내게도 닿아 가슴이 뭉클했다. 사회적 약자와 함께 그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꿔보려는 사월을 많이 응원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불끈 솟았다. 


** 2018년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평등행진 중


편견과 마주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서야


“한국 사회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굉장히 심각하잖아요. 저는 좋아하고 싶고, 친해지고 싶고, 설레는 감정을 동성에게 가졌어요. 자연스럽게 내가 동성을 좋아하나 보다 생각했어요. 그런데 엄마가 다니는 교회에 갔더니 동성애자를 비난하는 이야기를 하는거예요. ‘이건 뭐지? 그럼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나는 돌연변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나를 사회는 ‘레즈비언’이라고 하거나 ‘성소수자’라고 칭하죠.

저는 훌훌 잘 털어버리는 성격이에요.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데 내가 잊어버린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각자의 성 정체성이 있는데 일반적인 기준과 다르다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포괄적차별금지법’을 꼭 만들어야 해요.

내가 사회로부터 받은 부당한 대우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었던 일들이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여자니까 이래야 돼’, 라면서 정해진 틀 안에 가두는거요. 지금은 화장을 안 하고 옷도 편하게 입고 다니지만 사회는 저에게 여성스러움을 요구해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서 고졸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학교 어디 나왔어?” 라고 물어요. 이처럼 당연한 게 아닌데 당연한 것처럼 말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제일 힘들었던 때는 중·고등학교 때였어요. 그때만 해도 학교 체벌이 엄청 심했거든요. 많이 맞았어요. 발목양말도 신으면 안 되고 머리도 길면 강제로 잘리고, 눈이 내린 운동장에서 기합을 받고. 단지 우리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리가 동의하지도 않은 기준을 들이대며 체벌했어요. 잘못한 게 있으면 체벌이 아니라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우리를 벌했어요. 학교 다닐 때가 제일 피곤하고 힘들었어요.”   


90년대생임에도 불구하고 더 이전에 학교를 다닌 사람과 별 차이 없는 폭력적인 학교 생활을 했다니 놀랍다. 아이들의 생각과 패턴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학교는 아직도 그대로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했다. 군부독재가 끝났고 유신시절도 아닌데 아이들 머리를 함부로 자르는 학교라니, 학교의 민주화는 도대체 언제 오는 것일까. 


“세상이 좀 더 시끌시끌해졌으면 좋겠어요.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들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낯설지 않은 환경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익숙한 환경에서 살고 익숙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들으면 변화가 보이지 않죠. 사람을 만날 때도 나는 최근에 이런 생각을 했는데 이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 때문에 더 많이 만나게 돼요. 그러면서 관심을 갖게 되고, 조금 지나면 편해져요.  

서울에 살고, 사무직 노동자고 비장애인이고 이성과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정형화된 틀 안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을 하고, 서로 다른 삶을 인정해 주고 약자의 편에 서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대면하기 힘들잖아요. 인권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은 더 고민이 많아요. 사람들을 만나서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못 만나고 있으니까요. 또 한 가지는 집회를 못 하니까 답답해요. 그래서 요즘은 온라인으로 집회하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최근에  ‘닷페이스’라는 플렛폼에서 ‘우리는 없던 길도 만들지’라는 슬로건으로 온라인에서 ‘퀴어퍼레이드’를 했어요. 본인 캐릭터 만들고 해시태그 걸고. 처음 경험하는 온라인 집회여서 낯설었지만 이렇게라도 자긍심을 드러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코로나19 때문에 원래 있었던 문제들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어요. 재난이 닥치니까 재난도 차별적으로 오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증장애인이나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재난의 정도와 장애가 없고 집이 몇 채씩 있는 부자들이 느끼는 재난의 정도는 많이 달라요. 예전에 어느 책에서 ‘재난이 닥쳤을 때 상위 1~10% 사람들은 그것을 미리 알고 떠난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재난을 피할 방법이 없어서 더 많이 다치고 죽는다’라고 쓴 걸 본 적이 있어요. 감염병이 오니까 사각지대가 많이 보이고 우리 사회가 평등하지 않다는 게 체감이 돼요. ‘K방역’이라는 말로 한국사회의 방역시스템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하는데요,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공개하는것을 문제 삼지 않는 점은 안타까워요.”


**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집회금지 규탄 기자회견에 참여한 사월


사회가 정한 기준에 속하지 않고 성소수자 당사자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문제는 피부에 와 닿았다. 사월은 사람들에게 활기찬 모습으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인터뷰가 시작된 지 2시간이 되자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허물없는 이야기도 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다산인권센터’의 홍보를 잊지 않았다. 


다산인권센터에 관심 부탁


“저를 소개할 때 ‘다신인권센터 사월이에요’, 라고 하면 ‘아, 다산!’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다신이 역사도 깊고 좋은 활동가들도 많은 곳인데 제가 누를 끼칠까봐요. 지금까지 다산이 쌓은 시간, 경험, 노력, 등을 쭉 보면서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하면 좋을지 발견하고 있어요. 다산은 인권운동의 자리를 묵묵히 지킨 곳이라서 자부심과 애정이 많아요. 

3년 후면 다신인권센터를 만든지 30주년이 돼요. 지금까지의 작업을 잘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난 3월에는 새로운 활동가도 채용했어요. 그분이랑 좀 더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지지하고 후원해 주는 분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웃음).”


다산을 후원해 달라는 압박을 느꼈다. 하지만 난 이미 후원하는 곳이 여럿이므로 꿋꿋하기로 했다. 귀한 시간을 내준 답례로 저녁을 먹자고 했으나 입양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고양이가 기다린다며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못다한 얘기를 슬쩍 털어놓았다.  


“제가 이렇게 활동하게 된 건 엄마의 영향이 커요. 저는 엄마랑 사이가 좋지 않았어요. 엄마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2년 전부터 다시 대화를 시작했어요. 생각해보니까 엄마는 지금까지 한번도 성실하지 않은적이 없었어요. 일을 하고 계셔서 저희 자매와 시간을 많이 못 보냈어요. 그래도 틈만 나면 책을 보시고 신문과 뉴스 보는걸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끊임 없이 고민하시고, 한 곳에 머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저도 엄마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저, 독립했어요. 3년 전에(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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