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행복한 소통을 꿈꾸는, 박원진

더이음
조회수 503

인터뷰 취지 : [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터뷰 글 등록일 : 2020. 4. 18

글쓴이 : 재은.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소리를 눈으로 볼 수는 없을까요? 

     

내가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당시, 행사나 포럼을 진행할 때 문자통역서비스를 이용했다. 발표자의 PPT 화면 말고도 다른 화면에는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실시간으로 적혔다. 앱을 깔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었다. 실무자 입장에서 속기 자료가 남아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행사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들리지 않는 사람에 대한 배려 같은 것,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는지 분위기로 전해지는 게 아닐까. 

 

문자통역서비스를 만든 AUD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원진님을 만났다. 다른 일로 늦어 헐레벌떡 카페에 들어가자 원진님이 고생했다며, 키프트카드가 있으니 커피를 사겠다고 했다. "제가 사야 하는데.." 작게 얘기하며 계산대에 함께 섰다. 마스크를 낀 점원은 기프트카드를 그대로 쓰겠냐, 아이스로 교환하겠냐, 매장에서 마실 거냐 몇 가지를 물었다. 원진님은 난처한 웃음을 지었다. 입 모양을 보며 상대의 의사를 이해하는데 점원이 마스크를 끼고 얘기하자 자신에게 뭐라 말은 하지만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중간에서 고개를 세네 번 끄덕였다. 청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일상적 어려움을 실감했다.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IMG_0015.jpg

출처: 박원진

 

신나게 놀던 어린 시절  

경상북도 지천에서 유년기를 보낸 원진님은 청각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언어재활(언어 능력과 청각 능력의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치료)을 받았다. 어느 정도 말을 알아듣고 할 수 있게 되자, 지천을 쏘다니며 놀았다. 그는 개구쟁이였다.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어요? 

“부모님한테 들은 건데 제 기억에도 없는 아기일 때 고열로 며칠을 앓은 적이 있대요. 병세가 호전되고 시간이 흘렀는데도 또래에 비해 유난히 말이 없고 반응이 느렸다고 해요. 병원에서 청각장애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죠. 그 후 어머니는 학교 교사를 그만두시고 저를 데리고 언어치료(지금은 '언어재활'이라고 함)하러 다니셨어요. 지천이란 시골에서 살았는데 언어 치료하기 위해 대구까지 비둘기호를 타고 다녔어요. 재은씨는 비둘기호 알아요?"

 

이름만 들어봤어요.  

“역마나 서는 파란색 기차였어요. ㅗㅗㅗ모양의 의자가 쭉 나열되어 있고요." 

 

모르겠어요(웃음) 지천은 어떤 곳이에요?  

“지천은 시골이에요. 산, 강, 논과 밭, 여러 가지로 저에겐 거대한 놀이터였어요. 동네 친구들하고 위험하게 놀기도 했어요. 산에 있는 그네를 타다가 넘어가서 데굴데굴 굴러 가슴뼈에 금이 난 적도 있고요. 고구마 서리하고, 굴렁쇠를 굴리고, 쥐불놀이를 하고, 꽝꽝 얼은 강에서 아이스하키도 했어요. 신나는 유년 시절을 보낸 것 같아요. 도시에서 나고자란 친구들이 들으면 저보고 언제 적 사람이냐고 물어요.(웃음)”

 

말만 들어도 개구진 아이였겠어요. 또래 친구들하고 의사소통 방법은 조금 달랐을 텐데 같이 놀기엔 무리가 없었나요?  

"그때는 몸으로 놀잖아요. 말로 규칙을 정하기보다 한 번 보면 이해가 되니까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비석 치기, 구슬 굴리기 등등.. 그냥 막 놀았죠." 

 

(웃음) 어릴 땐 몸으로 놀다가 크면서 말로 놀게 돼요.  

"맞아요. 그렇게 놀다가 6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갔어요. 중학교 2학년까지는 참고서로 이해했는데 3학년이 되니 누가 설명을 해줘야 이해되는 것이 늘어났어요. 다른 얘들보다 자꾸 뒤처지는 거예요. 어렵게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나 같은 학생을 가르치는 특수교사를 꿈꾸게 되었죠." 

  

지천.jpg

출처: 네이버 이미지 

원진2.jpg

출처: 박원진 페이스북

 

 

특수학교 교사에서 소설 벤처 창업까지  

사립 특수학교를 그만두고 공립학교에 가려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다가 우연히 소셜벤처 경연대회에 참가했다. 수업을 듣거나 인터넷 강의를 볼 때 자막이 없어 이해가 안 되던 걸 생각하며 ‘실시간 자막 지원 플랫폼’이라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켰다. 

  

특수학교 교사가 되셨나요? 

“네, 대학교 4학년 때 청각장애 학생이 다니는 학교로 교생실습을 했어요. 교생실습 땐 수어가 필수라 많이 늘었죠. 전에도 농학교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한 달 정도 농학생들과 시간을 보내다 보니 교사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더 커졌어요. 그러나 농학생이 줄어서 농교사를 뽑지 않은 추세였어요. 임용시험을 쳐서 공립학교로 가야 하는데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없어 시험 준비가 어려웠어요. 기간제로 일 하면서 임용고시를 병행했죠. 마지막으로 기간제를 했던 곳이 제주도에 있는 특수학교예요. 그때가 마지막 교직 생활이었어요.”

 

마지막 교직생활이요? 일을 그만둔 계기가 있었나요?   

"제 전공이 초등특수교육 쪽인데 임용고시 준비로 초등학교 과목 10가지를 공부하던 중에 청각장애인 대상으로 영어교육을 하는 소셜벤처를 알게 됐어요. 이상하게 소셜벤처라는 단어에 끌렸어요. 그때가 2012년인데요. 아이폰4가 보급되고 대중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소셜 네트워크가 퍼지는 걸 보면서 사람의 말소리를 글자로 보여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생겼어요. 앞에서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내 핸드폰에서 그대로 볼 수 있는 거죠. 

임용 공부와 병행하며 대회 준비를 했어요. 공부보다 사업계획서 쓰는 게 더 즐거웠어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구상하느라 설레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웃음) 결국 임용시험은 못 보고 지금까지 이 길을 걷고 있네요." 

 

그렇게 AUD를 시작하게 됐군요.  

"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면서 2013년부터 창업 준비를 했어요. 사회적 기업가 육성사업에도 참여하게 되고 H-온드림에서도 수상하고요. 2015년에는 청년정책네트워크라고, 청년들이 서울시에 정책을 제안하는 장에 참여해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목소리를 반영하고자 노력했어요. 서울시장 정책 공약이 되어 작년부터 지자체에서 시범운영을 했고 올해 본격적으로 시행해요." 

 

서울시에 청각장애인 숫자가 얼마나 되나요?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전국에 약 26만 명이고 서울시는 약 4만 5천 명 정도예요. 그러나 이건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하는 복지카드에 등록된 숫자인데요. 한쪽 귀가 안 들린다거나 청각장애인으로 등록 안 되는 난청을 포함하면 250만 명은 될 거라고 해요."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는 생활방식이 분명 작용하겠어요.

"네, 소음성 난청이라고 해요. 소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생긴 거죠." 

 

사실 청각장애를 가진 분들의 언어는 수어라고 생각했어요. 원진님과 대화하면서 청각에 장애가 있더라도 음성언어가 가능하다는 걸 알았고요. 수어, 음성언어.. 어떤 언어를 받아들이고 쓰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수어 못지않게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음성언어를 활용해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다수 존재해요.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것보다 방송이나 안내문,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수어로 소통하는 농인 분들이 많이 보이니 '청각장애'하면 대부분 '수어'를 사용한다는 인식이 생겨서 그래요. 하지만 틀린 말이 아니에요. 예전에는 수어 쓰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는데 요즘은 수어를 배워보겠다는 사람이 많아졌죠.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문화이자 사회화인 거에요. 저도 수어를 한국어만큼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농인을 만나면 수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편해요." 

 

결국 모국어가 무엇이냐에 따라 다른 셈이네요. 

"네, 저는 수어든 음성언어든 소통하는 어려움을 줄이고 싶었어요. 인터넷 강의를 들어도 자막이 없으면 이해가 안 되고 행사나 포럼에 가도 연사가 마이크 들고 얘기하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죠. 화면을 하나 더 마련해서 바로바로 말하고 있는 글자가 보인다면 저희만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같이 보면서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요?" 

 

맞아요. 넷플릭스에서 한국 영화를 볼 때 자막을 켜놓고 보기도 해요. 

"자막이 나오면 소리를 줄이지 않아요? 평소에 귀로 정보를 듣기 위해 주변 소음보다 볼륨을 키우면 청신경이 서서히 손상될 수 있어요. 자막이 나오면 청각정보에 집중된 것을 시각정보로 분산되니 귀의 부담이 줄어들죠." 

 

IMG_0018.jpg

IMG_0019.jpg출처: 박원진 (문자통역서비스 사진) 

 

 

AUD 사회적 협동조합, 이사장 

2014년 2월 14일, AUD 사회적 협동조합을 창립했다. 생산자와 소비자, 후원자와 직원을 포함한 다중이해 조합원과 선순환 고리를 만들며 AUD를 함께 만들고 있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운영하는 이유가 있나요? 

"주식회사나 비영리 민간단체를 고민했어요. 알아보니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이면서 영리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더라고요. 운영할수록 조합원의 힘을 느껴요." 

 

조합원이 몇 명이예요? 

"약 270명 정도예요. 조합원을 설명하면 생산자는 문자 통역사(속기사), 소비자는 문자통역서비스를 이용하는 기관이나 단체, AUD를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상근 하는 직원이 모여있어요. 개인적으로 조합원이 더 늘면 좋겠어요. 청각장애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거든요. 게다가 한국사회에서 장애인을 지원하는 복지서비스는 인력지원이 대부분인데 이들의 처우가 열악한 편이에요. 청각장애인을 지원하는 문자 통역사(속기사) 역시 처우가 열악하고요. 우리에겐 통역을 담당하는 '생산자'인 셈인데요.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도록 처우개선도 고민하고 있어요." 

 

이사장으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있나요?  

"조합원의 참여를 만드는 게 가장 큰 가치인 것 같아요. 조합원이 십시일반으로, 마음을 담아 보내주는 후원금으로 7년을 운영 해왔죠. 물론 조합원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바라는 사회상과 열망이 모여서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저희는 문자통역서비스에만 집중하려는 건 아니에요. 청각장애인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억지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거잖아요. 포럼이나 콘퍼런스 등 행사뿐만 아니라 교육기관, 기업 등으로 점점 영역을 넓혀가고 있어요. 사회적 장벽을 조금씩 낮춰가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어요." 

 

저도 제 일처럼 어깨가 으쓱한걸요.(웃음) 

"장애인을 바라보는 관점이 점점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비장애인들이 겪지 않을 어려움을 장애인은 늘 겪고 있어요. 단적인 예로 지금처럼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에서 두드러져요. 다들 마스크를 쓰고 다니니까 입모양을 볼 수가 없어 의사소통이 어려워요."

 

온라인 개학으로 인터넷에서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청각장애 학생은 이해가 어렵다는 기사를 봤어요. 

"그렇죠. 북유럽에서 집단면역을 실험한다고 하지만 저는 반대예요. 제일 피해를 입는 사람은 장애인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일 거예요." 

 

동의해요. 재난 상황에서는 사회적 약자가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돼요. 여전한 차별을 보게 되네요.    

“청각장애인에 대한 가장 큰 차별은 고정관념으로 인한 거예요. 청각장애인이기 때문에 '못할 것이다 또는 이래야 한다'는 거죠. 대표적으로 청각장애인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거죠. 판사, 변호사, 의사 등 소위 전문직종에 진출한 지체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 비해 청각장애인이 많지 않아요.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학업을 이어가기 어렵게 하거든요.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 개인의 지능과 게으름으로 치부해선 안 되죠. 

현재는 초등학교부터 일부 지원하기 시작했고, 성인의 경우 서울시에서 문자통역서비스를 무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으니 짧게 5년에서 길게 10년 뒤에 문자통역지원받은 것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그럴 수 있겠어요. 원진님은 사람들하고 어떻게 소통하는 게 좋으세요?

“잘 안 들리니까 크게 말하거나 입모양을 과장해서 보여주고 또는 너무 천천히 말하는 일이 생겨요. 소통하기 전에 어떻게 이야기하는 게 좋은지 물어보고 이야기 나누는 게 가장 좋아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 누구나 존중받길 원하죠. 서로 존중하고자 하는 마음이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수준인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으신가요?

“얼마 전이 결혼기념일이었어요. 결혼하자마자 공부하고, 창업하고, 대학원 다니고, 직원이 늘어서 책임감으로 애쓰며 살다 보니 결혼한 지 벌써 10년이 됐네요. 아내는 청각장애 교육을 위해 미국에서 특수교육학 박사 공부를 하고 있어요. 매년 이야기 나누는 주제가 '우리는 어떤 부모가 될까'인데요. 저는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요.(웃음)” 

 

원진1.jpg

출처: 박원진 페이스북 

 

 

원진님의 생각을 전해 들으면서 소통이란 무엇인가 질문이 생겼다. 말을 주고받는 대화만을 ‘소통’이라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의 생각,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원진님은 소통하는 사람이다. 반갑게 맞이하는 손짓, 순하게 웃는 얼굴, 차분하고 또박또박 생각을 이야기하는 말투, 상대의 이야기를 숨죽여 듣는 눈빛. 온몸에서 소통하려는 분위기가 배어있다. 

"소통은 단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나라 쌍방향으로 이루어지잖아요. 헬렌 켈러가 그런 말을 했어요. 눈이 보이지 않아도 귀로 듣고 반응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지만, 귀가 들리지 않으면 소통하기 어렵다고요.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원활히 소통할 수 있도록, 모두가 행복한 소통을 꿈꿔요. AUD협동조합의 슬로건이에요." 

나는 어떤 태도로 듣고 보고 반응하며 말하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에게서 배운다. 보고 듣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을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는 어떤 마음을 주고받고 있는가.

진심으로 그가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마음을 보탠다. 

0

뉴스레터 구독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이메일로 받아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