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전환, 니트생활자 박은미

인터뷰 취지 : [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터뷰 글 등록일 : 2020. 2. 22

글쓴이 : 재은.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냅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어떤 전환, 니트생활자 박은미

이번이 꼭 6번째 퇴사였어요. 그동안 무업 기간에는 늘 초조하고 불안했어요. 자기혐오에 빠지기도 쉽고요. 근데 이번엔 퇴사 동기가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 든든하더라고요. 완전히 다른 경험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을 모아 같이 놀아보기로 한 거죠. 

"월급 대신 삶의 의지를 드려요" 백수들이 출근하는 회사(한국일보 20191126) 

 

어딘가 속하지 않던 나의 첫 무업기간, 이 기사를 읽었다. 때론 버티기에 가까운, 무엇으로 하루의 시간을 채워야 할지 암담할 때 일상적인 규칙이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주간회의, 팀 프로젝트 등 혼자 하기보다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에 동의했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간회의를 하자고 제안했다. 비슷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주기적 만남'의 필요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를 읽으면서 이 분들을 만나보고 싶었다. 직장을 그만두면 푹 쉬려고 했는데 또다른 불안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게 된, 나의 무업기간에 대해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니트생활자' 페이스북 페이지로 메시지를 보냈다. 반나절만에 답이 왔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인터뷰 시간, 은미(니트생활자 대표)님과 나는 오래된 친구처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진 그녀의 태도에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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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니트생활자 페이스북 

  

그동안 경험한 일, 그리고 6번의 퇴사   

은미님은 20대 중반부터 30대 후반까지 10년 넘게 비영리단체, 공공기관, 기업재단에서 일했다.  


그간 어떤 일을 했어요?  

"첫 직장은 자원봉사센터였어요. 가족봉사단을 운영하고 홍보, 지역 네트워크 사업, 집수리 등 4년 정도 다양한 일을 했는데 더 큰 조직을 경험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두 번째 직장은 비슷한 업계의 협의회였어요. 일은 많고 방치된 조직이었죠. 버티다가 1년 반 만에 퇴사하고 공공기관으로 바로 이직했어요. 기업 사회공헌팀과 협력해 풀뿌리단체를 지원하는 일을 했어요. 밤낮없이 일하고 몸이 상했죠. 2년 간 일하면서 갈증이 생겼어요. 여기서 한 단계 올라가고 싶은 욕구 있잖아요. 조직 안에 있으니 해소가 안 돼요. 그만두고 처음으로 긴 백수생활이 시작됐어요."  


첫 백수생활은 어땠어요?  

"정말이지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돈이 떨어지니까 불안해서 빨리 일하고 싶은데, 전 직장보다 나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욕심을 내다보니 취업은 안 되잖아요. 조급했죠. 1년 넘게 괴로운 백수 생활을 하다가  30대 중반에 기업재단에 들어갔어요. 그동안 다닌 곳과는 조직 체계나 문화가 완전 다른 곳이었어요."  

 

기업재단이요?   

“네, 제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어요. 막상 들어가보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시키는 것만 해야 했어요. 근무하는 2년 내내 바보가 된 느낌이었죠. 

 

아무래도 문화가 다르다 보니 생경함을 느꼈겠어요.  

"맞아요. 저는 외부인이었어요. 일 자체가 만족스럽지 않고 회사 동료들과 업무 외적인 학벌, 재산까지도 끊임없이 비교했어요. 내 영혼이 이렇게 피폐해진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스스로 갉아먹으며 지냈어요. 계약이 연장되는 시점에 가임기 여성이란 이유로 계약을 종료시켰는데요. 또 한 번, 긴 무업기간이 찾아왔어요." 

 

아, 끔찍하네요. 정말 힘들었겠어요. 

"그런 퇴사를 ‘당하고 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마음이 회복되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물론 회복과 별개로 일을 안 한지 한 달이 안 되어 불안해지죠. 계속 어딘가에 이력서를 넣었어요. 면접에 가면 저의 이직 경험을 나열하면서 정착하지 않는 사람으로 판단하기도 하고. 적은 연봉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에 작은 단체에 면접을 보면 ‘이런 일 하던 분이 괜찮겠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무업기간이 1년을 넘어가며 현실을 직시하게 됐어요. 일할 땐 내가 어느 정도 가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나오니까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걸 깨달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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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미님 

 

마지막 퇴사, 그 이후 

마지막 직장은 창업한 사람들을 돕는 기관이었다. 출근한 지 1년도 안 되어 부당한 일이 발생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만히 있는 게 맞을까 고민했고, 2018년 12월 동료와 함께 퇴사했다.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네요. 무업기간마다 다 다를 것 같아요. 어떤 차이가 있나요? 

"30대 초반까지의 무업기간은 무조건 취업을 위한 준비기간으로 보냈어요. 매일 구직사이트를 봤고 이력서를 썼고 좌절하며 지냈죠. 30대 중반에  맞이한 무업기간은 어떻게 해도 취업이 잘 안 되는 거예요. 취업 말고 다른 대안의 일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기간으로 주로 보냈던 거 같아요. 마지막 퇴사 이후, 달라졌어요. 회사라는 게 내가 원하지 않은 상황에서 나올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요.  

무엇보다 퇴사 동기가 있다는 게 가장 커요. 그동안 혼자 도서관 다니고 생각으로만 '뭐하지?' 했다면 이번엔 '우리 뭐 해볼까?'가 되는 거예요. 두 명이 모이니 뭐든 실행에 옮기기가 수월해요. 조급함이 사라질 정도로 든든하고요. 옆에 사람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참 크게 다가왔어요."  

 

퇴사 동기는 어떤 분이에요? 

"저와 비슷한 성향의 분이에요. 사람을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고. 퇴사 경험이 많고요. 우리 둘 다  '여기가 마지막 직장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곳 가기 쉽지 않다. 뼈를 묻자' 생각으로 들어갔다가 같이 회사를 나왔으니 혈맹으로 맺어진 관계죠.(웃음)" 

 

퇴사 동기와 사적인 만남으로 끝날 수 있는데 사람들을 모으고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둘이 같이 시간을 보내보니까 이전에 혼자서 보내는 기간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마음이 안정되고 무엇이든 실행에 옮기기가 수월했거든요. 그래서 각자의 계획을 같이 실현해보기로 했어요. 이왕이면 같은 처지의 백수들이 고립되지 않고 밖으로 나올 수 있게.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어서 '니트생활자'라 이름 붙이고 활동을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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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어떤 전환, 니트생활자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가 없는 청년 무직자를 뜻하는 '니트'에 주체적으로 살고 싶은 '생활자'를 더했다. 니트생활자란 이름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와 네이버 블로그를 열었다. 

  

둘이기에 가능한 안정감과 기쁨을 나누고 싶었던 거네요. 

"네, 백수가 되는 순간 일상의 루틴이 바뀌잖아요. 늦잠 자고 일어나면 괜히 죄책감 들고. 자기 전엔 오늘 뭘 했나 싶어요. 자존감이 떨어지죠. 어느 순간 나를 소개할만한 타이틀이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 초라하고 슬프고요. 무업기간이라는 게 공백기이고 방치되기 쉬워요. 어떻게 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는 건데,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다가 다음 스탭으로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정거장이 되고 싶었어요."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나요?  

"니트생활자의 첫 오프라인 모임이 기억나요. <백수들의 한양도성 걷기> 프로젝트였어요. 완벽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에 둘이서 사전 답사하고 광장시장에서 음식도 미리 먹어봤죠. '누가 올까' 했는데 15명 정도 모였어요. 같이 걷고 이야기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되는 걸 느꼈어요. 백수라는 공통사로 금방 친해졌고요. (웃음)" 

 

참가비를 받는 모임이었어요? 

"아뇨. 같이 식사를 하면 1/n 해요. 참여자들이 가끔 물어봐요. 돈도 안 받고 왜 이런 활동을 하냐고, 저희는 그래요. 우리가 무슨 부귀영화 누리겠다고 사전답사까지 하면서 준비하는지 모르겠다고. 그런데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비록 돈을 벌지 않지만 이렇게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에 즐겁다고. 그렇게 6개월 활동하다가 서울시 npo지원센터 지원을 받게 됐어요." 

 

그래서 시작한 게 '니트컴퍼니' 인가요? 

"맞아요. 아이디어는 '극락컴퍼니(하라고이치, 북로드 2011)'라는 책에서 얻었어요. 일본 사례인데 은퇴한 분들이 회사 놀이를 하는 소설이에요. 우리도 어딘가에 소속된 상황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회사라는 명칭을 썼죠. 회사의 장점 중 하나는 나의 루틴을 잡아준다는 것. 규칙적으로 가고 오는 행위 자체가 활력이 되죠. 또 하나는 회사가 다양한 사람을 만나서 교류하는 사회적 장이라는 거예요. 니트컴퍼니를 통해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교류하도록 구성했어요. 

저희가 추구하는 건 회사이기에 명함이나 목걸이 명찰을 만들었고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 보며 회의했어요. 주간회의에서 개인 프로젝트를 점검하는데요. 개인 프로젝트는 각자가 정해요. 예를 들면 하루에 한 번 산책하기, 사과 챙겨 먹기, 스쿼트 하기 등이에요. (웃음) 팀 프로젝트도 했어요. 일을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서 운영했어요."

 

참여한 사람들 반응은 어땠어요? 

"일단 가짜 회사 놀이라는 콘셉트를 재밌어했어요. 처음에는 ‘니트생활자' 자체를 모르니까 다단계 회사인 줄 알았다는 분도 있었고요(웃음). 니트컴퍼니에 참여하며 백수인 자신이 갈 곳이 생겨 든든하고, 동지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소감이 기억나요. 또 대기업을 퇴사하셨던 분인데 니트컴퍼니 활동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대요.  

니트컴퍼니 활동은 마무리했지만 지금도 관계를 이어가요. 같이 점심을 자주 먹고 고민을 나누고, 함께 이력서도 써요(웃음). 어떤 분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니 괴롭다고 하더라고요. 본의 아니게 제가 조언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럴 땐 작게라도 사회생활을 할 수 있게 응원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력서를 쓰셨죠. 꼭 붙길 바라고 있답니다. 그분 첫 월급에 밥을 얻어먹을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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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은미님 

 

새롭게 시작, 올해의 도전 

생계를 유지해야 해서 작년 한 해는 뉴딜일자리에 참여했다. 니트생활자 모임 있는 날엔 휴가를 쓰면서 활동을 병행했다. 올해부턴 니트생활자 활동을 집중한다고 했다. 인터뷰 내내 신난다는 표정이다. 

 

올해는 또 다른 시작이겠네요.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니까요. 불안하지 않아요?

"여전히 불안한 부분이에요. 하지만 길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되고요. 마음의 배짱이 생겼나 봐요. 예전에는 알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했어요. 이 나이에 알바를 하고 있으면 남이 나를 어떻게 볼지 걱정되니까 부끄러웠거든요. 하지만 퇴사를 반복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일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었고요. 모든 노동은 귀하다는 걸 알게 되니 무슨 일을 해도 ‘내가 즐겁게 하면 되겠구나’ 생각해요.” 

 

니트생활자 활동을 하며 은미님이 보고 배우고 느끼는 것들이 많겠어요. 

"다양한 일 배경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요. 어떤 직업이든 그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면 안 되겠다는 걸 느껴요.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보게 돼요. 회사 일에 빠져있을 땐 엄마가 아프신 것도, 동생들이 얼마나 힘든 10대를 보냈는지도 모르고 살았거든요. 지금은 가족, 친구들을 자주 만나요. 

그리고 나는 직장생활이 잘 맞는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무업의 자유로운 생활도 잘 맞는다는 것도 새삼 알게 됐어요.(웃음)"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군요.(웃음) 

"그렇더라고요. 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가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가족을 잘 챙기고 싶어요. 그동안 무심했거든요. 그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 있잖아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삶. 하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하나씩 도전하며 살아보려고요." 

 

올해의 도전이라 함은?

"니트생활자를 잘 운영하는 거요. 새로 공간을 얻게 됐고 소정의 활동비를 지원받게 됐어요. 올해 중에 책을 내고 니트컴퍼니 프로젝트도 계속할 거예요. 사실 주위의 도움으로 이렇게 시작하게 된 건데요. 올해는 저희가 손 내밀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해 봐야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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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니트생활자 블로그 

 

 

살면서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삶은 그저 이해되어야 할 뿐이다. 이해하는 것이 많아질수록 두려움은 줄어든다.

_마리 퀴리 (인용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천자오루, 사계절)   

 

일을 시작하고 그만둔다는 것.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당연한 과정이지만 늘 쉽지 않다. 겪을수록 내성이 생기기도 한다. 나라는 사람을 이해하는 계기도 된다. 어떤 상황을 못 견디는지, 출퇴근하는 대신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자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나를 이해할수록 새롭게 시작할 힘을 얻는다.

은미님과 대화하며 발견한 건 '전환'의 지점이었다. 취업하는 게 당연했지만 무업기간이 생기면서 ‘무엇을 새롭게 해볼까' 질문하고 함께 퇴사한 동료와 니트생활자를 만든 과정이 흐르듯 전해졌다. 무업기간이란 직장과 직장 사이에 버팀의 시간이라 생각했는데, 삶을 전환하기 좋은 틈이었다.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힘이 생겼다. 만약 니트생활자 활동을 마무리하고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녀의 삶에서 전과 후는 분명 다를 것이다. 

 

니트생활자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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