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쾌하게, 일관성있게 살아가는 활동가, 희도리


인터뷰 취지[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 전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은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활동을 통한 변화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전국적인 대화 모임 주간으로 2019년 11월 4일(월)~8일(금)까지 5일간 전국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터뷰 날짜
글쓴이재은.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일 오후에 수영을 배웁니다. 물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데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합니다. 내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하루가 소중합니다.


일을 한다는 건 하루하루 시행착오의 연속이다. 큰 일 아닌 것에 바들거리기도 하고 세상을 얻은 듯 뿌듯할 때도 있다. 물론 실무를 처리하고 조정하고 협의하는 지난한 날들이 훨씬 많다. 

 

수많은 서류 안에 내 생각이 얼마간 포함됐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앞을 보면 가야 할 길이 하염없이 남은 것 같지만, 문득 돌아보면 꽤 먼 거리를 걸어왔음에 대견스러울 때가 있다. 그 걸어온 길의 거리가 뿌듯하게 자랑스러울 수도, 다시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갈 만만찮은 거리에 좌절할 수도 있다. 내가 걸어온 이 길이 후회가 될지, 보람이 될지 길의 끝에서나 알게 되겠지. 그저 걸을 뿐이다. 매우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그것이 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숙명이다.

_107수 (윤태호, 미생, 위즈덤하우스, 2012) 

 

내가 직장을 그만둔지1년이 다 되어 간다. 2020년이 다가오는데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하다가, 한 걸음 한 걸음 20여 년을 걸어온 희도리님이 생각났다. 여성민우회, 아름다운재단, 한국인권재단, 서울시NPO지원센터, 사랑의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그리고 만화를 읽고 만화가를 조명하는 활동까지. 나무로 따지면 나이테가 진하게 그려질 만큼 다양한 시민사회 조직을 경험했다. 조직에서 배운 것, 한계를 바탕으로 새롭게 시작하는 에너지가 궁금했다. 

 

10번째 인터뷰, 나보다 앞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선배를 만났다. 사심에서 시작한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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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도리 페이스북 

 

 

일보다 만화가 먼저 

 

희도리님 집으로 초대받았다. 4호선 쌍문역에서 버스를 탔다. 우이동 MT촌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오래된 아파트, 노란 은행나무가 끝없이 펼쳐졌다. 유치원에서 들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아파트에 퍼진다. 집에 들어서자 정갈하고 아늑했다. 거실 벽을 채운 책장은 만화책으로 가득하다. SNS로 희도리님의 ‘만화 애정’을 알았던지라, 만화로 말문을 열었다.  

 

 

만화는 언제부터 좋아하셨어요?

 

"일이 먼저가 아니라 만화가 먼저예요. 눈 뜨면서 만화가 좋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만화책을 쌓아놓고 읽었어요. 남들이 취미라고 하는 게 저한테는 베이스예요. 일은 나중이에요.(웃음) 만화책을 사기 위해 일을 하는 게 있죠. 좌우명 중 하나가 '만화책은 사서 보자'예요. 만화가들이 안정적으로 잘 살아야 되니까요." 

 

만화에 대한, 만화가에 대한 애정이 많으신 것 같아요. 

 

"세상에 저평가된 만화가 많아요. 만화가 중에서도 작품을 보면 활동가라고 생각되는 분들이 있어요. 삼성 백혈병 문제를 그린 김성희 작가처럼 사회적 영역을 다루기도 하고 생활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자기 경험에서 아무렇지 않게 얘기하는 작가도 많아요. 치매 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이야기를 엮은 심우도 작가도 있고요.

 

만화는 상상의 영역이기보다 수용의 영역인 것 같아요. 글은 상황을 상상해야 하잖아요. 만화는 글과 그림이 같이 있으니 받아들여야 해요. 만화는 상상이라고 하지만 만화가들의 상상인 거죠. '이 글을 이미지로 풀었을 때 이 만화가는 이런 식으로 하는구나' 배우기도 하고요. 만화에는 a컷과 b컷 사이의 비약이 있잖아요. 꼬치꼬치 따지면 작가랑 싸워야 해요. '그럴 수 있지'해요. 저는 상상력이 많은 사람보다 수용적인 사람인가 봐요."  

 

일을 그만두고 최근까지 팟캐스트를 진행하셨던 거죠? 

 

"네, 만화가들을 초대해서 이야기하는 팟캐스트를 진행했어요. 공익활동에서 쌓은 언어를 잊어버리고 싶었어요. 했던 말들이 아무 말 아닌 것 같고. 공익 영역의 일을 안 하려고 만화 쪽을 팠어요. '공익'은 삶의 가치이기 때문에 내가 판타지 소설을 쓴다 해도 내 안에 관점이 있을 테니까. 어차피 연결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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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분이 희도리님 (사진: 희도리 페이스북) 

 

 

그동안 해온 일, 나의 기준  

 

 

어떤 일을 해오셨어요? 

 

"대학 때 여성학 강좌를 듣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고민한 것들이 정리되고 벼락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고 좋았어요.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 114에 전화해 여성단체 연락처 알려달라고 한 뒤 찾아갔어요. 그게 동북여성민우회였어요.(웃음) 민우회는 직업이라기보다 정체성이에요. 저를 여성으로 살게 해 준 곳이자 저의 언어가 처음 만들어진 곳이에요. 일과 삶이 구별되지 않는 8년 덕분에 오랫동안 이 영역에서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으면서 쉬다가 아름다운재단에서 5년 일했어요. 아름다운재단이 있는 건 알았어요. 1% 나눔이란 말이 센세이션 했죠. '기부가 자선적인 영역에 머물러있을 때 나눔을 적극적인 운동이라 선언했구나' 나눔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곳이잖아요. 온순해 보이지만 치열함을 가진 방법이라 배워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모금 일을 했어요. 기부하신 분의 인생, 철학, 네트워크, 바람이 다 전해지는 일이더라고요. 돈이 많다고 기부를 하는 건 아니니까요.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여성이란 정체성이 지금까지 일을 하시는 데에 어떤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여성민우회에서 아름다운재단 갔을 때 제일 어려웠던 건 여성민우회는 I(나) 메시지가 중요한 단체거든요. 나는,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모여서 우리라는 꽃다발을 만들었다면 아름다운재단은 WE메시지였어요. 아름다운재단은, 우리는. 저는 '우리'를 모르겠더라고요. 나만 있었지. 찾느라 헤맸어요. 그러면서 I 도 필요하고 WE 도 필요하고 어떤 게 더 좋은 게 아니라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는 언어를 갖는 게 중요하구나 느꼈고요.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소통할 수 있는 WE를 고민하는 훈련이 됐어요. 

 

무엇보다 여성주의에서 배웠던 주변성, 즉 중심이 하나가 아니라는 메시지가 남아요. 세상을 풍성하게 보는 관점이죠. 민우회에서 선배들이 저를 저답게 살 수 있도록 해줬다는 게 고마웠어요. 어떤 기백, 기세 같은 걸 배웠달까. 생각보다 큰 자산이에요." 

 

좋은 선배를 만나는 건 정말 복이더라고요.(웃음) 아름다운재단 이후엔 어떤 일들을 하셨어요?   

 

"아름다운재단에서 모금에 이어 배분 사업을 하다가 공익 영역에 포커스 맞추고 싶다는 생각에 그만두고 2년 정도 한국인권재단에서 반상근으로 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일은 인권에 기여한 사람에게 주는 상을 바꿨었어요. 그때 '한 사람의 탁월함으로 운동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 사람에게 주는 상은 소명을 다하고 있다. 인권활동을 하는 작은 활동에 프로젝트 지원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같이 일하는 분들이 공감했기에 가능했어요. 그러다 서울시 NPO지원센터라고, 협치형 중간지원조직이 만들어졌을 때 준비단계부터 했어요." 

 

서울시 NPO지원센터에서는 어떤 일을 하셨어요? 

 

"공익 영역을 지원하는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계속 있었어요. 돈으로만 지원하는 건 효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고요. 단체가 성장기에 있을땐 돈만 지원해도 아웃풋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봐요. 그래서 지원사업 팀장을 맡았을 때 돈으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게 강했어요. 그리고 ‘선정되었다, 선정되지 않았다’로 결론 나는 지원사업을 넘어서고 싶었어요. 지원기관과 지원받는 곳을 아무리 파트너라고 해도 그렇게 된다면 갑을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기존의 지원사업을 넘어선다는 건 어떤 지원일까요? 

 

“지원의 결과가 공공재를 만드는 방식인 거죠. 지원사업 결과보고서는 대부분 담당자 폴더 안에 있잖아요. 지원받지 않는 사람, 단체도 지원사업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업. 예를 들면 사업을 하면서 발견한 노하우나 콘텐츠, 경험이 비슷한 일을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이요. 지금도 NPO지원센터에서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원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성과가 나눠지는 구조네요. 

 

"맞아요. 지원사업의 그러데이션 방식을 고민해요. OX가 아니라 지원을 고민하는 사람부터 지원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까지 풀을 넓혀야 하는데 대부분 '지원된다, 안 된다, 선정됐다, 안 됐다' OX로 하죠. 그러면 지원받은 경험이 많은 단골만 올 수밖에 없어요. 우리 사업을 잘 이해하는 사람만 남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은 딱딱해지고요. 

 

새로운 사람이 있어야 그 언어를 풀고 설명하고 새롭게 설득하는 방식을 만드는 건데, 늘 참여하던 사람들과 사업을 하다 보면 룰이 새롭게 바뀌어서 문제제기받는 걸 피곤하게 느껴요. 행정이 공고화 돼요. 사실 그렇잖아요. 가이드라인이 아무리 정교해도 케이스로 들어가면 케바케예요. 가이드만으로는 풀 수 없어요. 사업운영의 방향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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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도리 페이스북 

 

 

내 인생의 일관성

 

 

조직에서의 배움이 다음 조직으로 연결되네요. 여성민우회, 아름다운재단, 한국인권재단, 서울NPO지원센터까지. 굵직한 경험을 흐름으로 들으니 대단하신 것 같아요. 저는 그만둘 때 매번 진저리 치며 나와서 (웃음)   

 

"그만둬야겠다고 마음먹는 건 괴로운 일이잖아요. 충만한 상태는 아니니까. 그럴 땐 몸도 안 좋고 진절머리가 나기도 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 털어보면 진흙은 묻어있는데 하나씩은 있던 것 같아요. 그 방향성이 다음으로 끌어가고. 저도 제 이직이 이렇게 해석되고 정리되는 게 놀라워요.(웃음) 

 

내가 못 버틴 걸까, 나만의 일관성을 갖고 가는 건가. 나약하다는 생각으로 괴롭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이 바닥에서 장기근속한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게 될까. 뭔가 연속성은 있거든요. 내 느낌에 이런 인생을 살았다는 그런 거. 적어도 나한테는 내가 내 문제를 피한 게 아니라 지금 필요한 사람, 필요한 일을 직면하면서 살았다는 느낌을 가지면 좋겠어요." 

 

여러 조직을 거치면서 나한테 맞는 일도 보였겠어요. 

 

"저는 큰 사업보다 내 손으로 그 사업을 만질 수 있어야 되는 것 같아요. 중간지원조직이 빨리 지치는 게 위로 당기고 아래로 성과는 내라고 하고. 만져지는 게 없잖아요. 저는 중간지원조직을 좋아하긴 하는데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사업들이 잘 맞아요. 규모가 커서 만져지지 않는 사업보다 나도 같이 뛰는 마음으로 들여다봐야 해요. 하지만 공익활동이 사이즈를 키울 필요는 있어요. 거기에 맞는 사람들도 필요하고요. 다만 저는 작지만 구체적인 솔루션을 만드는 일이 좋아요. 고속도로를 만들기보다 국도를 만들고 안에 휴게소도 만들고 매점도 만들고 여기엔 정원도 있어야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진짜로 사람이 변하는 거. 사람이 그 경험을 통해 인생에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는, 우리가 진짜로 만났다 느껴지는 그런 거 있잖아요. 그게 없으면 빨리 지쳐요. 가이드라인이 정확한 것에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좀 답답해요." 

 

사람을 통해 변한 계기가 있으세요?

 

"나는 조금씩 다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가장 윗길이라고 생각하는 관계는 어렵고 힘들고 불편한 얘기를 안전하게 할 수 있는 관계. 불편한 얘기를 맨들맨들하게 포장하고 돌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그러나 파트너십이 쌓이다 보면 얼굴 붉히고 할 수 있는 말도 편안하고 안전하게, 우리 관계가 흐트러지지 않는다는 믿음 아래 서로에게 속내를 얘기할 수 있는 관계요. 그런 파트너십을 만들었을 때 우리가 깊게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라고 느끼죠. 

 

어떤 일을 하고 있는데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할까 빙의되는 순간이 있어요. 기운이 떨어졌는데 이럴 땐 누구라면 이렇게 할 거야. 잠깐 그녀를 불러오자. 그녀가 되어 상황을 바라본다거나. 그 단계에 왔을 때 교감한다고 느껴요. 말하고 보니 무서워, 귀신이야.(웃음)"

 

재밌네요.(웃음) 그런 사람이 많으세요? 

 

"10명? 나와 다른 결정을 했는데 좋았고 도움받았던 사람들이 있어요. 힘들 때, 안 풀릴 때, 자꾸 맴돌 때 생각나요." 

 

우와, 열명이라니. 많아요! 

 

"오래 살았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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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희도리님 페이스북 

 

 

새로 시작하는 일들  

 

 

올해 봄부터 사랑의열매에서 일하고 계신 거죠? 

 

"NPO지원센터 그만두고 2년 반 동안 만화로 콘텐츠를 만들며 지냈어요. 그런데 같이 하자고 제안받는 일은 시민사회 쪽이더라고요. 어느 순간 해야겠다 싶었어요. 만화와 공익활동 둘 사이를 넘나들겠다는 생각으로, 공동모금회에서 올해 6월부터 일하고 있어요." 

 

어떤 일을 하고 계셔요?

 

"저는 전략기획본부에서 시민사회 소통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복지 관련한 일을 복지관에서만 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 시민사회와 연결하는 일들이에요. 연말 모금 성금 방향 정하는 사업, 모두다토론회, 뭉쳐야혁신이다 아카데미 같은 사업들을 하고 있어요." 

 

어떠세요? 

 

"모금회는 제가 갈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곳이에요. 큰 조직은 처음이라 '이런 조직은 어떤 강점을 가질 수 있을까. 지금 시대에 이 조직의 강점이 발휘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요. 대부분 조직의 해체나 유연한 조직을 얘기하지만 큰 조직도 필요하잖아요. 여행지가 넓어졌다는 생각은 들어요. 가본 데가 많았다, 남극도 다녀왔어 이런 느낌. (웃음)

 

지금 이 시기에 나를 만나고 내가 만난 사람들이 저렇게 다르구나. 같은 시대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구나. 모금회에서 많이 느껴요." 

 

큰 조직이라 그동안 일해오신 것과 많이 다르겠어요. 

 

"모금회 있어보니까 여긴 상하관계가 뚜렷한 조직이에요. 40대 중후반에 연차가 이 정도 쌓이면 해야 하는 역할, 위치, 책임의 무게, 권한이 있어요.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음으로써 주변 발란스가 무너질 수 있다는 느낌을 받기도 하고요. 사실 모금회 그만두게 되면 오히려 높은 직책을 맡을 수 있겠다 생각해요. 그동안 잘하려고 해서 안 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재밌고 즐겁게 한다기보다 잘해야 한다는 시선 때문에, 그렇게까지 잘할 수 없어서 외면한 건데 부채감이 있었어요.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았다는 부채감이요.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직면하고 그 문제를 돌파해야죠. 내 연차와 이 바닥에서 얻은 경험치, 나는 혼자가 아니고 이 정도 되면 주변에 사람도 있는데 피해 간 거 아닐까. 나와 같은 사람들이 나보다 빨리 지쳐서 이 바닥을 나간 거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면 패배자 같은 느낌도 들고. 다음번엔 역할이 주어지면 숙제처럼 해봐야겠다고 생각해요.”  

 

만화는요? 

 

"만화도 꼭 이어갈 거예요.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숨 쉬듯 하게 될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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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도리님 거실 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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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대화하던 자리 (사진: 희도리 페이스북)

 

 

친한 친구가 업무 과다로 퇴사를 고민한다. 전직장 동료는 퇴사하고 집에서 차를 내린다. 그렇게 살아간다. 그만두고 새로 시작하며 각자가 만드는 궤적이 있다. 만화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도 하고, 차 한잔에 담긴 소중함을 전하기도 하면서. 모두가 '일관성있게'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 내년 이맘때엔 뭐 하고 있을까요?” 

마주 보고 웃었다. 희도리님에게 선물 받은 만화책을 가방에 담으니, 식량을 얻은 듯 배불러졌다. 무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에서 나는 주로 잘 듣고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다. 이번엔 누구 인터뷰인지 모를 정도로 내 이야기도 실컷 했다. 희도리님 이야기를 통해 수면 아래 가라앉은 것들이 올라왔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내가 이전에 어떤 경험을 했고, 과정에서 무얼 배웠고, 어떤 부분에 괴롭고 힘들었는지 어떤 사람과 잘 맞고 어려운지 직면해야 하는 거였다. 인터뷰 후 며칠을 흘려보냈다. 나눈 대화가 소화될 때까지 기다렸다. 지금이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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