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매개로 단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활동가, 데조로


인터뷰 취지[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 전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은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활동을 통한 변화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전국적인 대화 모임 주간으로 2019년 11월 4일(월)~8일(금)까지 5일간 전국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터뷰 날짜
글쓴이재은.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일 오후에 수영을 배웁니다. 물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데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합니다. 내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하루가 소중합니다.


손목이 시큰거리고 허리가 뻐근해서 병원에 갈 때마다 운동을 하라고 했다. 몸에 근육이 붙어야 잡아줄 수 있댄다. 늘 숙제가 남았다. 무슨 운동을 해야 하나. 한두번 가다가 발길 끊기는 헬스장, 동작이 어려운 요가, 비싸서 망설이는 필라테스를 놓고 고민하다가 어영부영 넘어갔다.  

 

은평구에 직장이 있던 시절, 살림의료협동조합을 알게 됐다. 친구에게 운동센터 다짐을 추천받았다. 근육운동을 할 수 있고 몸을 펴는 스트레칭도 한다는 설명에 혹했다. 나는 둘 다 필요했다. 그리고 데조로 선생님(이하 데조로샘)을 만났다. 열댓명의 참여자들이 서로 인사했다. 달리기로 몸을 푼 뒤, 폼롤러로 몸의 마디마디를 문질렀다. 생전 자극 없던 곳에 폼롤러가 닿자 통증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내 몸이 있구나. 아팠지만 시원했다.   

 

대부분 맨손으로 할 수 있다. 4-5가지의 동작들을 3-4회 반복했다. 쉽다고 생각했는데 하다보면 금방 땀이 났다. 열댓명의 참여자들은 각자가 할 수 있는 속도로 차근차근 했다. 다이어트 목적으로 경쟁하듯 땀흘리지 않고 잘 모르면 옆 사람을 따라했다. 1시간이 끝나면 손을 모아 화이팅을 외쳤다. 낯설고도 친근했다. 운동이란 곧 함께하는 감각을 배우는 과정이지 않을까. 같은 동작이어도 저마다의 상태, 몸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다름 속에서 각자의 건강이 채워졌다.  

 

나 역시 긴 세월 동안 내 몸을 지독히 혐오한 여성으로서,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내 몸을 학대한 나날을 거쳐 운동처방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사람으로서 직접 경험한 ‘여성과 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 책을 썼다. (한겨레 / “여자애가 무슨 권투야" 설마 아직도 이런 말을 하나요? / 2019.11.12)  

최근 데조로샘의 책 '여자는 체력'이 출간됐다. 책을 읽으며 공감했다. 운동을 매개로 단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활동이란 생각이 들었다. 살림의료협동조합에서의 활동을 마무리하고 새롭게 공간을 연다는 소식을 접하며, 만나서 이야기 듣고 싶었다. 약간의 팬심도 섞였다. 운동하고 글쓰는 ‘멋진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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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데조로)

 

 

운동을 매개로 삶을 다루는 활동

 

뚝섬역에서 3분 거리, 새로 오픈한 헤이그라운드 서울숲점 9층 ‘프롬더바디’에서 만났다. 운동공간과 사무실이 있다. 크게 뚫린 창문으로 서울숲의 가을이 보인다.  

 

 

'여자는 체력' 책을 잘 읽었어요. 유용한 정보가 많더라고요.   

 

"운동을 시작하거나 하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팁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책을 냈어요." 

 

여성들이 몸을 쓰고 운동하며 느낀 에세이들이 최근에 많아졌잖아요. 책의 방향 등이 고민됐을 것 같아요. 

 

"이 책을 3년 전에 계약했는데 그 이후로 여성과 건강에 대한 책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운동하는 여성들의 에세이에 반가운 마음이 드는 한편 '내가 책을 쓰는 이유는 뭐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운동과 자기방어를 가르치는 건강운동관리사(질환이나 체력적 특성 등의 이유로 무슨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건강 안내자이자 트레이너)로서, 운동하는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는 내용을 실어야겠더라고요. 자기 몸에 집중하는 것도 중요하고 우리 몸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데조로샘이 운동을 매개로 삶을 다루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얘기하고 싶어요. 그 얘기를 꺼내는 도구가 저로썬 운동, 건강 이런 주제예요. 제가 운동을 해야겠다, 체육 분야로 가야겠다 생각한 이유는 내 몸을 움직이고 같이 운동하는 사람들끼리 커뮤니티가 생기는 건 좋은데 운동을 잘못 배워서 몸이 망가지거나 아니면 커뮤니티 안에서 여성이 차별받는 일들이 생기는 거예요. 분명히 좋았던 점이 있는데. 그걸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동료와 공간을 찾기 어려워서 스스로 공부했어요." 

 

그렇게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하 살림)을 만난 거예요? 

 

"네, 체육학과에 들어가고 운동생리학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가 젠더와 건강을 고민하는 의료인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살림이 생긴다고 하더라고요. 운동처방사인 활동 조합원으로 결합했어요. 건강실천단이라고 현미 채식이랑 걷기만으로 대사증후군을 예방하는 프로그램이있었는데 근력운동이 추가되니까 사람들이 좋아했죠. 살림이 조합원 공간을 열면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도 만들자고 얘기되어 '다짐'이 생긴 거예요. 

 

살림조합원 특성상 아프지 않은 젊은 여성이 많았고, 건강은 건강할 때 지킨다는 의료사협의 가치와도 연결되어 평상시에 자기 몸을 관리하는 게 중요한 가치이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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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비엥에서 진행한 출판기념회 / 사진출처: 데조로)

 

 

삐쭉삐쭉 자란 사람을 품는 공간 

 

데조로샘은 살림에서 7년을 일했다. 여성, 젠더, 그리고 공동체란 키워드를 두루두루 익히는 시간이었다.  

 

 

살림에서 일하면서 어땠어요? 

 

"제가 추구하는 건 확산 가능성이에요. 문화는 한 군데 고여있기보다 퍼져나가야 되잖아요. 어떻게든 알려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하는데 의료협동조합 안에 있는 건강센터는 한계가 있었어요."  

 

한계요? 

 

"협동조합 의사결정구조는 많은 회의를 거쳐요. 제가 생각하는 운동센터는 트렌디하고 기민하게 움직여야 하거든요. 즉흥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일도 있어요. 같이 해보자고 제안하거나 여기서 강의해보자고 요청올 수 있는데 저는 어디에 물어보고 나서 말씀드리겠다고 하니까요. 고민이 됐죠.” 

 

그러게요. 어려웠겠어요. 협동조합의 특성도 한몫했고요. 

 

“네, 활동하면서 여러 정체성이 있었어요. 지역주민, 조합원, 사업소의 창립멤버, 임원.. 다양한 정체성과 다양한 관계의 역동 속에서 나를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했죠. 상황과 맥락에 따라 역할과 개입의 정도가 계속해서 달라져야 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럼에도 7년을 일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제가 여성과 건강, 공동체라는 주제를 깊이 생각해볼 계기가 됐고요. 사실 실패도 많았어요.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도 했고요. 사람의 몸을 다루는 직업이다 보니 내가 제공한 트레이닝 때문에 누군가가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어요. 뼈저리게 반성했어요. 그랬을 때 괜찮다고 다시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신뢰에 보답해야겠더라고요. 이 운동을 하니 이런 무리가 있다거나, 아팠었는데 이걸 하니 나아졌다는 피드백을 주고 받으면서 트레이너로서도 성장했고요. 

 

저한테 운동을 배우신 분들이 저를 키운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키웠다고요? 

 

"저는 저만의 세계 속에서 제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고집해나가면서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것 같아요. 운동처방사로 트레이닝할 때도 그렇고, 관계를 맺을 때도 그렇고 저의 아집이나 교만함이 있었어요. 그렇게 철이 없던 저를 은평에서 만난 분들이 잘 살펴줬어요. 

 

40대, 50대 동네 언니들이 어떻게 자신이 단단하게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지를 롤모델처럼 보여줬던 것들이 앞으로 몇 십년 뒤에 나 같이 삐쭉삐쭉 아무렇게나 자란 비혼 여성을 만나게 됐을 때 어떻게 품을 것인가 생각하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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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서 진행하는 자기방어 수업 / 사진출처: 데조로)

 

 

앞으로 벌어질 실험들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9월부터 프롬더바디 일을 시작했다. 프롬더바디는 누구나 전문가로부터 지속적인 건강관리와 교육을 받는 공간이다. 각자의 특성과 건강목적을 고려한 ‘운동주치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새로 시작하는 에너지가 데조로샘의 표정에서 전해졌다.    

 

 

앞으로 어떤 것들을 하고 싶어요? 

 

"7년이란 시간을 거치면서 제 색깔이 좀 더 분명해졌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건강하게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목적도 더 분명해졌어요. 살림에서 일하기 전에는 막연하고 그랬었거든요. 살림이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해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 알게 된 것 같아요. 내가 좀 더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색깔을 가지고 새로운 센터를 만들어야겠다. 여러 실험을 해야겠다 생각했죠." 

 

어떤 실험이요? 

 

"우선 운동센터가 의료 사업소나 다른 사업소의 도움 없이 홀로 설 수 있을까. 말하자면 야생에 나온 거잖아요. 3000명의 조합원이 있는 협동조합 안에서 직원으로 일하는 거랑 정말 다른 세상에 나온 거예요. 운동센터가 얼마나 많아요. 생소한 운동 주치의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살아남을지 실험하게 된 거죠. 독립하면서 막 편하진 않았어요. 하지만 이거 말고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못하겠더라고요." 

 

프롬더바디는 어떤 곳인가요? 

 

"친구 통해서 이우연 대표님을 알게 됐어요. 첫 만남에 얘기가 잘 통했어요. 건강과 운동에 대해 얘기하며 트레이닝 관점이 일치한다는 걸 발견하고 같이 뭐라도 해봅시다 한 게 여기까지 왔네요. 

 

프롬더바디는 베이스캠프, 거점이에요. 여기 프로그램은 주로 GX(Group Exercise의 줄임말로 그룹운동), 특강, 세미나 그리고 PT랑 운동 주치의 등을 해요. 특강 카테고리 중 하나가 자기방어 훈련인데 좀 더 새로운 콘텐츠로 개발하고 싶어요."    

 

자기방어요?

 

"청소년기에 집단으로 연대하고 협력해서 어떤 일을 수행하는 과정을 많이 배우지 못하잖아요. 특히 여성은 팀 스포츠를 경험할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학생 때는 누군가를 밟아서 돋보이거나 점수로 이기는 방식으로 길러지니까요. 조금 다른 연대의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 스스로 몸을 돌보고 긍정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공교육에서 가르쳐주지 않잖아요.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개발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어요." 

 

호신술인가요? 

 

"자기방어 훈련은 단순히 호신술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 자기만의 무엇이 있어야 된다는 건데요. 다양한 움직임을 조합해서 자기만의 새로운 움직임으로 만들어내게끔 해주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신을 발견해나가는 태도가 결국 자기 삶에 녹아들겠죠. 그런 것들을 하고 싶어요."  

 

삶의 태도와 연결되네요. 

 

"맞아요. 무엇보다 자기방어를 영어로 셀프디펜스 트레이닝이라고 해요. 트레이너로 강조하는 건 언제까지 디펜스를 셀프로 해야 되냐는 거예요. 단무지도 아니고. (웃음) 물론 어떤 순간에는 혼자서 대응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되기 전에 공동으로, 공동체로 막아낼 수 있거나 방지할 수 있는 걸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 아닌가. 단순히 밤길을 데려다주거나 CCTV를 설치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주변 사람들과 안전한 관계 맺기가 무엇인지 실험하고 싶어요. 하다 보면 사회가 안전해지지 않을까."   

 

안전한 관계맺기를 실험하는 공간이군요. 다른 운동센터와의 다른 점이겠어요.   

 

"네, 저는 필라테스, 요가, 주짓수, 합기도.. 이런 식으로 한 종목만을 다루는 전문 센터를 만들 생각은 없어요. 저는 한 개인이 본인이 좋아하는 걸 잘하기 위해 ‘어떤 체력을 강화시키면 되는가. 어떤 사람을 만나서 어떤 커뮤니티에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는 센터를 만들고 싶어요.” 

 

새로 실험하면서 어떤 것들을 가장 하고 싶나요? 

 

"여기는 분위기가 달라요. 일단 구성원들 자체가 90년대생이 많고 남성이 많아요. 저는 완전히 다른 집단, 다른 공간에서 이런 트레이닝을 할 수 있다는 게 제가 트레이너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서 새로운 분위기로 살림과는 다른 색깔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트레이너가 아니어도 자기방어에 대한 콘텐츠를 개발할 때 함께 고민할 수 있는 동료를 찾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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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롬더바디를 함께 운영하는 이우연대표와 함께 (사진출처: 데조로)

 

 

운동에서 시작해 ‘커뮤니티'로 마쳤다. 살림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해졌다는 이야기가 남았다. 키워졌다니. 함께 한 사람들의 품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일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서울숲을 오래 산책했다. 가을을 느낄 겸, 대화를 곱씹을 겸 시작한 걷기가 운동이 되었다. 살짝 땀이 나자 다리가 움직이는 걷는 행위에만 집중이 됐다. 생각이 구름처럼 흘러간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에 마음이 놓였다. 운동 효과다. 마음이 쉴 수 있는 움직임이 귀하게 느껴졌다.

 

번다한 일상의 스위치를 잠시 끄고 운동에 집중할 수 있는 곳, 다치거나 아파서 움직임이 전만 못해도 찾아가서 머무를 수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운동 공간이다. (여자는 체력 p30)  

데조로샘이 새롭게 열어갈 공간이 기대된다. 나도 이참에 내 몸을 살피는 운동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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