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영리를 좋은 직장으로 삼은 사람, 권난실


인터뷰 취지[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 전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은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활동을 통한 변화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전국적인 대화 모임 주간으로 2019년 11월 4일(월)~8일(금)까지 5일간 전국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터뷰 날짜
글쓴이신비. 시민단체에서 상근활동가로 일하다 2012년부터 [어쩌면사무소]라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해왔습니다. <어쩌면 이루어질지도 몰라>(2018, 슬로비), <사람, 마을, 세계를 잇다>(2019, 아모르문디)를 썼습니다.


비영리조직에서 일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어떤 사람은 이타적인 숭고한 희생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역시 하나의 직장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 간극은 일과 돈에 관한 시대적, 경험적 인식 차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지금까지 비영리조직을 이상적인 ‘직장’으로 인식할만한 사례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 바로 그런 사람이 있다. ‘미디어'와 ‘다음세대'를 키워드로 공익활동을 기획, 지원하는 다음세대재단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권난실은 십수 년째 이어온 비영리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대체로 균형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회고한다. 어떤 ‘거대한 사명감' 같은 건 없고, 그냥 운 좋게 좋은 직장을 얻어 만족하며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 표정에서 망설임이나 아쉬움 따위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인터뷰 대상이 되는 건 처음이라면서도, 이것저것 의심스럽게 찔러보려 드는 나의 궂은 질문에 솔직하고 겸허하게 답해준 권난실의 이야기는 애초에 내가 가졌던 기대를 뛰어넘을 정도로 흥미롭고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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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당일, 권난실 (사진: 신비)

 

 

다음세대재단에서 일하신 지 얼마나 되었죠?

 

다 합해서 십 년이네요. 처음에 회사 잠시 다니다가 재단에 입사해서 7년 있었고, 중간에 다른 데로 옮겨서 4년 일하다가 다시 온 지 3년째예요.

 

재단은 직장으로서도 만족스러운가요?

 

네. 적성에 맞았나 봐요. 새롭게 시도하는 것도 재밌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좋고. 원래 저는 제 일이 그렇게 막, 매일매일 ‘아, 오늘 가서 이 일을 어떻게 하지?’ 이럴 정도로 싫지는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경제적으로는 어때요?

 

급여는 항상, 제가 독립하고 가정을 이루고 살 정도는 되었던 거 같아요. 신랑이랑 둘이 버니까 좀 완충이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사회적 기준에서 보는 자산은 하나도 없어요. 집도 없고 차도 없고. (아이들이 있는데 차가 없어요?) 저희 집에 주차장이 없어서 없앴어요. 주말에 나갈 때는 쏘카나 타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그래도 애들 기본적인 교육 시키고, 나중에 집 사고, 이 정도는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육아 힘드시죠.

 

힘들죠. 난장판이죠, 삶은. 둘째는 아직 어려서 집에 있는데, 엄마가 근처 사시면서 와서 봐주세요. 요즘 월요일은 오후 출근하고 금요일에는 네시에 퇴근해서 얼추 주4일 일 하고 있어요. 신랑도 시간을 탄력적으로 쓸 수 있는 상황이어서 괜찮은 편이죠. 육아만 계속하면 너무 힘들 것 같은데, 4일 일하고 나면 ‘아, 애들 좀 보고 싶다’ 그러다가 주말에 3일 애 보고 나면 신랑이랑 서로 수고했다며 ‘아, 얼른 출근하자’ 그래요.

 

 

pasted image 0.jpg주말, 가족들과의 일상 (사진: 권난실)

 

 

처음에 회사 다니셨다고 했는데 어떤 곳이었어요?

 

벤처 다녔어요. 휴대폰이랑 티비에 들어가는 부품 만드는 기술회사였는데요, 거기서 짧게, 1년 일했어요.

 

거기서 어떤 일 하셨어요?

 

기획팀에서 홍보를 맡았어요. 제품 사진 찍고 홍보하는 그런 일 했어요. 카탈로그 만들고, 해외 업무도 하고.

 

그럼 홍보 마케팅을 공부하셨어요?

 

아뇨. 대학 다닐 때는 사회복지 전공했어요. 사실 학과 선정할 때 사회복지과가 있는지도 몰랐어요. 마침 사회복지사 자격이 국가시험으로 바뀌던 때라 다들 사회복지가 전망이 있다고 할 때였어요. 그래서 들어갔죠.

 

가보니 사회복지 영역 자체는 너무 좋았어요. 그치만 현장에는 못 가겠더라고요. 그 일을 할 자신이 없었어요. 대학교 3학년 마치고 재수도 해 보고, 다시 복귀해서 일반 기업 가겠다고 구직했는데 잘 안돼서 1년 놀았어요. 그러다 간 게 그 벤처회사였어요.

 

한양대 안산캠퍼스에 입주한, 요즘 같으면 창업보육센터 같은 곳에 입주해있는 그런 회사였어요. 전 직원 백 명 정도인데, 기술 쪽이니까 이공계 인력이나 연구원은 엄청 많아도 지원팀은 그냥 대리급 과장급 한 명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인사, 홍보, 회계 이런 거 한 명씩만. 그런 팀에서 제가 유일한 신입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배우는 것도 한계가 있고, 제 미래도 어차피 한 포지션밖에 없는 그 일을 위해 조직에 계속 있어야 하나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직을 하신 거군요.

 

네. 홍보 일을 했으니까 사회공헌 쪽으로 해볼까 생각했어요. 사회공헌이나 재단 같은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건 아니고, 그냥 검색하다 알게 되었어요. 다음세대재단 자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때였어요. 공개채용도 그때가 처음이었으니까요. 사무실이 선릉역 근처 어느 건물에 있었는데, 어떤 회사인지 알 방법이 없으니까 친구나 언니한테 웹사이트 보여주면서 이상한 회사는 아니겠지? 물어보고. 그렇게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원서 내고 면접 봤어요.

 

 

비영리 일 경험

 

다음세대재단은 2001년 포털 Daum을 운영하던 (주)다음커뮤니케이션의 임직원과 주주들이 개인기부금을 모아 설립한 공익재단이다. 기업과 연관은 있지만, 기업 내부의 사회공헌팀이나 기업출연 재단처럼 직접적으로 연계되지는 않은 독특한 형태였다. 한동안은 다음 사옥에 사무실을 두기도 하고 정기 기부도 받으면서 연결고리를 유지했지만, 몇 년 전 다음이 카카오와 합병한 후로는 일반 기업과 같은 선에서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다.

 

‘다음세대'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그동안 재단은 인터넷과 미디어의 급격한 발달 속에서 미래 세대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키우는 데 관심을 두고 활동을 펼쳤다. 유스보이스, 올리볼리, 체인지온 같은 굵직한 사업을 런칭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으며, 최근에는 비영리 스타트업 지원사업 등 비영리 생태계를 다지는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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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당시 다음세대재단 웹사이트 모습

 

 

‘무슨 일 하는 곳인지 잘 모르는 상태로' 이직에 성공하셨는데, 입사해보니 어떻던가요? 이상한 회사는 아니었나요? (웃음)

 

일하는 방식이 좀 생소했죠. 이전 회사에서 일을 많이 한 건 아니었지만, 거기는 경영실적이라든지 전략 같은 거로 일을 했는데, 그런 일반 기업에 있다가 여기 오니까 생소하더라고요. 맨날 회의랑 말을 그렇게 많이 하고. (웃음)

 

청소년 활동을 돕는 멘토 선생님들도 다 제가 처음 본, 특이한 분들이었어요. 그전에는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어른들의 모습이었죠. 그분들 만나면 되게 신기했어요.

 

적응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괜찮았어요. 바쁘기도 하고 재미도 있고 그랬어요. 유스보이스 일하면서 청소년 미디어 지원사업이랑 탈학교 청소년, 지역 공부방 지원 사업도 몇 년 했는데요, 처음엔 다 외계어였어요. 영상이나 웹 만드는 데 필요한 프리미어 프로그램 같은 거 저는 전혀 모르는데도 일단 지원해야 하니까 대여하는 곳 알아보고...

 

실무는 빨리 익던가요?

 

전에 일한 직장의 창업자들이 대기업 출신이었어요. 그래서 문서나 메일 작성법 같은 거 엄청 배웠거든요. 보고할 일 있으면 원페이지 결재문서 쓰기 그런 책 읽고 훈련하고. 그랬다가 여기 왔는데, 다행히 제가 주로 함께 일했던 분도 그런 방식으로 일하셔서 어렵지 않았어요. 이런 페이퍼워크가 힘들다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는 습관인지 몰라도 그런 걸 좀 해야 정리가 되는 스타일이에요.

 

외부 이해관계자들과 만나는 건 어땠어요?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대안학교, 지역아동센터, 그런 현장에 계시는 분들은 저보다 연차도 많고 그런데 제가 너무 모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회의 갔다 오면 되게 긴장하고 그랬어요. 어쨌든 저희는 지원하는 입장이잖아요. 현장에서 요구하는 걸 다 못 해줄 때 적당히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좋았던 것은, 한 사업을 5년 동안 맡아서 서로 계속 만나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괜찮아졌어요. 지금은 그분들도 다 다른 데 계시지만 여전히 연락하고 지내요. “우리가 20대에, 아무것도 모를 때 만나서 이제 40이 되었어!” 그러면서.

 

일하다가 ‘아, 내가 진짜 비영리 세계에 왔구나’ 그런 걸 느끼는 순간이 있었어요?

 

면접 볼 때, 누군가 “삶의 가치가 뭐냐”고 물어봤어요. 그때까지 저는 가치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라고 말했죠.

 

사실 제가 어떤 일을 하는지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몰라요. 저는 뭔가 시대적 사명을 띠고 공익활동을 하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그보다는 직장으로 만족했어요. 그래서 오래 있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급여도 적정하다고 생각했고, 일하면서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에 민감성을 갖는 것, 그런 것이 잘 맞았어요. 

 

그때 재단이 설립 초기여서 사업이 많지 않았어요. 어떤 사업을 할지 막 고민하던 때여서, 아시아 청소년 사업 구상하면서는 직원들이 나라를 하나씩 맡아서 발제하고, 유스보이스 캠프 할 때는 모든 직원이 가서 조별 모둠 담당하고 그랬어요.

 

어떻게 보면 그 시기가 재단 사업의 부흥기였던 것 같아요. 무슨 사업만 하면 사람들이 관심도 많이 보이고 반응도 오고, 뭘 해도 평가가 긍정적이고. 그런 게 재밌었던 거 같아요.

 

협력 관계이긴 했지만, 포털 다음의 영향도 있었겠죠?

 

그렇기도 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아요. 지금 청소년들은 다음 몰라요. 카카오는 알지만.


비영리 영역에 처음 진입한 경우에 특히,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관계망이 필요한데 그런 걸 얻기 힘들다는 말씀을 종종 하시거든요. 꼭 업무가 아니라도 내가 사는 방향에 대한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나누는 관계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건 어땠어요? 혹시 입사 동기는 있었나요?

 

네. 세 명이 같이 들어왔는데 다른 두 분은 오래 계시지는 않았어요. 한 분은 3개월 정도에, 다른 분은 1년 후에 나갔어요. 두 분 다 그 전에 재단이랑 다른 일을 하다가 들어온 경우였는데, 조직 안에 들어와서 일하는 게 잘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와서 오히려 잘 맞았고요. 그래도 서로 지금까지 연락하고 지내요. 계속 이 영역에 있으니까 또 만나게 되더라고요.

 

동기들이 떠나고 나서는 주로 누구랑 고민을 나눴어요? 

 

팀장님들이랑 많이 놀았어요. 일 끝나고도 같이 놀고.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네, 괜찮았어요. 신입이어서 해맑게 막, “선배들은 이럴 때 어떻게 일했어요?” 물어보고. 그래서 조직 내에서 일 때문에 고민할 때 그걸 나눌 사람이 없거나 하진 않았어요.

 

제가 다른 단체로 옮겼다가 다시 와서 보니까 직원들 관계가 좀 쿨하긴 하더라고요. 서로 크게 관심 갖지 않고 각자 일에 집중하는. 재단 사업이 어느 순간 정형화 돼서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저는 지금 만나는 사회적 관계의 대부분을 재단에서 만난 것 같아요. 일찍 떠난 동기들도 계속 만나고, 같이 일했던 개발자도 그렇고, 팀장님들도 지금은 다른데 계시지만 제가 뭐 일하다가 고민이 되면 여전히 연락해서 물어봐요.

 

 

비영리 수평 이동

 

2000년대 중반에는 비영리 일터를 직장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가 제법 진지한 토론 거리가 되곤 했다. 같은 의미에서 ‘활동가는 노동자인가?’라는 질문도 자주 제기되었다. 알음알음 소개를 받거나, 자원 활동 또는 인턴을 거쳐 활동가가 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공개 채용으로 전혀 모르던 곳에서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고, 한 단체에서 다른 단체로 수평 이동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드물었다. 그런데 권난실은 공채로 비영리를 처음 접했고, 7년이 지난 후에는 커리어 손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소규모 비영리단체이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Creative Commons Korea, 이하 CCK. 사단법인 코드의 전신)으로 이직했다. 그런 뜻밖의 선택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7년 동안 잘 다니다가, 갑자기 왜 이직을 하신 거예요?

 

너무 지겨워서요.

 

일이 특별히 문제 있거나 사람들과 문제가 있거나 하는 게 아니고요?

 

네. 다른 이유 없어요. 7년 동안 재단에서 하는 사업을 다 해봤거든요. 지겨워서 다른 걸 하고 싶었어요. 사실 너무 가벼운, 이런 이유로 옮기는 게 쉽진 않았어요. 주위에서 "왜 이직하려고 해?" 하면 "그냥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 그렇게 말하는 게... 그런데 그때 제가 서른넷이었거든요. 여기 계속 있으나, 다른 현장에 가서 한 3~4년 보내고 나서 삼십 대 후반이 되나 저에게는 크게 지장이 있지는 않을 것 같았어요.

 

경력을 쌓을수록 좀 더 높은 지위를 갖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내부 승진을 거쳐서 리더가 된다거나 하는 방식은 생각하지 않았어요?

 

네. 그리 큰 조직도 아닌데 직급을 올려서 뭘 하고 싶다거나 권한을 갖고 싶다는 마음은 없어서 크게 미련 없었어요. 팀장 단지 한 달쯤 되었을 때였는데, 저는 그것도 부담스러웠어요. 팀원들이 나를 막 바라보고 있고 그런 게요. 요즘 저희 직원들도 팀장 다는 거 두려워하는데, 그때 제가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왜 CCK를 선택하셨어요?

 

타이밍인 거 같아요. 그냥 좀 새로운 일 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마침 CCK가 서울시와 공유도시라는 새로운 사업을 런칭하면서 사람이 필요했어요. 자리가 생겼는데 같이 하겠냐고 해서.

 

일의 전망이나 지속성 같은 것보다는 그저 새로운 걸 하고 싶었던 거예요?

 

네. 지금 같으면 여러 가지 고려했을 텐데 그때는 그런 것도 생각 안 했어요.

 

그때와 지금은 뭐가 다를까요?

 

지금은 제가 어떤 일을 했을 때 할 수 있는 역량이나 그런 게 파악이 된 상태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조직에 간다고 하면 저에게 기대하는 성과가 그때랑은 다를 거예요. 하지만 그때는 담당자로서 실무를 잘하면 된다, 원하는 조직에 가서 일하자, 라는 생각이 컸어요. 현장에서 내가 풀어내야 할 게 더 많으니까. 

 

그래서 현장으로 가보니 어떻던가요? 지원을 주로 하는 재단과 다르게 완전 ‘단체'인 건데요.

 

맞아요. 리얼이었어요. 정말 여러 가지가 새로워서 처음엔 당황스러웠죠. 아무것도 없이 그냥 부딪쳐서 해야 하는 것이 너무 많았어요. “우리 이렇게 일해도 되요?”라고 물었던 기억이 나요.

 

재단은 사업할 때 프로세스도 있고 재원도 있는 상황이었다면, CCK는 그렇지 않았어요. 보고 체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서 그냥 국장과 둘이 앉아서 이건 어떻게 할까 의논하고. 저는 정부 프로젝트 경험도 별로 없고 공유도시 개념도 생소한 상태였는데 가자마자 사업실행계획서를 쓰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노트북은 주시나요?” 그랬어요. (웃음) 미닫이사무실이라고, 은평에 새로 생긴 청년허브의 공유공간에 입주하던 때라 자기 자리도 따로 없었어요. 그런 게 저한테는 되게 큰 변화였어요. 

 

그런 구조에서 체계를 잘 만들어나가는 재미도 있잖아요.

 

음, 제가 그런 쪽으로 역할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4년 동안 CCK에 있으면서 정부와 협력 사업을 밀접하게 해 본 것이 되게 중요한 자산이 되었어요. 비영리에서 일하는 데 정부 행정이 되게 중요한 파트너더라고요. 그런 행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돌이켜보면 제가 재단에서 다른 곳으로 이직하고 싶었을 때 선택지가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꼭 비영리에서만 일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거든요. 공단 같은데 시험을 볼까, 기업 사회공헌팀이나 다른 재단으로 갈까, 그 이후는 또 어떻게 할까 고민도 많이 하고 시도도 했었어요. 그러다 CCK에서 일하게 된 건데, 만약 그 경험이 힘들고 안 좋고 그랬으면 또 어떻게 했을지 모르겠어요. 중간지원조직이 많이 생겨나는 때였고, 혁신파크 입주하고서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여러 소셜벤처나 스타트업의 모태가 된 곳들이 모여 있어서 그 계기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 흐름이 있던 시기다 보니 할 일도 계속 생기고, 이전에 갖지 못했던 네트워크가 확장되었어요. 그 덕에 십 년 넘게 쭉 일해온 거죠. 이제는 비영리 영역으로 거의 확정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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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K 활동 당시 모습 (사진: CCK)

 

 

젊은 리더가 되다

 

CCK에서 일하던 이 시기는 비영리 ‘업계'에 정착하는 것뿐 아니라 권난실 개인의 삶의 중요한 결정들이 이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육아휴직은 못 했지만, 근무 형태와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서 그런 변화 속에서도 활동을 중단하거나 관계 단절을 겪지 않을 수 있었다.

 

예산이 할당된 정부 사업을 함께 하면서 급여도 안정적으로 보장받았다. 그 4년 동안, 행정과 협업하는 역량을 익힐 수 있었던 동시에 자기가 더 좋아하고 재미를 느끼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정책이나 제도를 파고드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당사자와 직접 만나고 지원하는 일을 더 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차에 또 한 번의 수평 이동 기회가 왔다.

 

 

참 운이란 게 있는 것 같아요. CCK 사무국에도 변동이 생겨서 제가 사무국장 역할을 맡을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고민을 좀 했는데, 아무래도 저작권이나 정책 같은 CCK의 활동 영역이 저에게 맞는지 의문이 들더라고요. 마침 창립 10주년이라 단체명도 바꾸고 이후 방향도 논의하고 그럴 때여서 새로운 사람으로 사무국을 꾸리는 게 좋겠다고 얘기하고 그만두기로 했어요. 그리고는 예전에 일하던 다음세대재단에서 새 사무국장을 찾는다고, 와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재미가 없어서' 그만두었던 곳인데요.

 

네. 그런데 재단에도 큰 변화가 있었어요. 다음과 카카오가 합병한 후로 외부 파트너를 본격적으로 찾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사업도 변화를 줘야 하고, 후원도 받아야 하고. 제가 CCK라는 ‘야생’에 있었잖아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기업에 제안서 넣고 사업이나 협력팀 꾸리고 그런 일,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재단 사업 영역이 CCK와 달리 지원 역할이기는 해도 제가 좋아했던 청소년 지원 사업 같은, 현장과 접점도 좀 있는 편이고요. 

 

부흥기에 일하고 떠났다가 격동기에 다시 돌아오신 셈이네요.

 

맞아요. 최근 3년이 재단으로서는 격동기였던 것 같아요. 재정이나 사업도 그렇고, 사람도 바뀌고.

 

돌아와서는 사무국장을 맡으셨는데, 전체를 보는 수퍼바이저는 처음이시잖아요. 적응기가 필요하진 않았나요?

 

(이전에 오래 있었으니까) 사업 자체의 이해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다만 조직 구성원들과 대화하는 게 낯설긴 했어요. 저는 돌아왔지만 먼저 있던 분들 입장에서는 새로운 사무국장이 온 셈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어떤 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다 보니 이 결정이 맞나 싶은, 그런 부담이 좀 있긴 했어요. 가이드라인도 제가 줘야 하니까.

 

그럴 때 판단은 어떻게 하셨어요?

 

대표와 상의도 하고, 직접 판단하기도 하고. 하지만 여전히 헤매고 있기는 해요.

 

그래도 그 부담보다는 여기서 일하는 장점이 더 많아서 선택하신 걸까요?

 

네. 실무에서 벗어나서 이런 관리를 한번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좀 이르긴 했죠. 통상적으로 다른 조직에서는 40대 팀장 뽑고 그러는데, 그에 비해서 제가 경력이 많지는 않아서요.

 

지금 조직 리더 중 다수는 처음 리더가 될 때 그리 나이가 많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 단체들도 역사가 쌓이니까 아무래도 전체적인 연령이 올라가는 듯해요. 그에 비해 다음세대재단은 다시 젊은 조직이 된 거 같네요.

 

그렇죠. 젊은 조직이 되었죠. 최근에 직원 세 명이 동시에 들어와서, 이제 저랑 회계 담당자 외에는 전 직원 35세 이하가 되었어요. 그래서 좀 외롭긴 해요. 진짜 이제 무슨 말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게 있더라고요.

 

직원 성장을 돕는 일도 필요하겠어요.

 

일단 교육은 대표에게 맡기고, 어떤 교육을 할지 계획은 직원들이 회의해서 알려달라고 했어요. 그 밖에 제가 생각하는 것은, 사업 관련한 것 외에 글쓰기 같은 거, 블로그 운영이라든지 그런 걸 좀 해보려고 해요. 예전에는 담당자들 바쁜데 그런 것까지 시켜야 하나 싶었는데, 요즘은 일 진행할 때 뭘 꼼꼼히 더 챙겨라, 이런 것보다는 평소 글 쓰고 사람 만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업 관련 글을 쓰더라도 자기 이름으로 하라고 해요. 저희 직원들이 조직 안의 멤버로 남지 않고 개인으로 드러났으면 해서. 그치만, 실패할지도 몰라요. 실패하면 말씀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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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세대재단이 매년 개최하는 비영리미디어컨퍼런스 체인지온 현장에서 (사진: 다음세대재단)

 

 

격동기, 기본과 원칙을 고민하다

 

비영리단체는 대체로 연 1회 주요 사업과 재정 현황을 담은 연차보고서를 발표한다. 기업이 매년 실적과 운영 상태를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재무제표와 비슷하지만, 비영리의 연차보고서는 조직의 사명이나 사회적 가치를 드러내는 데 보다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흥미롭게도, 다음세대재단은 올 초(2019년)에 처음으로 연차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번에 연차보고서 나온 게 처음이라면서요?

 

네, 연차보고서 제작은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보고를 안 한 건 아니에요. 사업별로 보고서를 만들고 운영 관련 보고는 웹사이트에 올리는 정도였는데, 대외적으로 배포하기 위한 인쇄자료를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재단은 그동안 늘 현장, 운영을 중시했어요. 현장에서 꼼꼼하게 챙기고, 잘한 점이나 아쉬운 점을 내부에서 서로 점검하고 기록하는 데 치중했죠. 그런데 이제는 외부 파트너와 협업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소셜미디어에 홍보하는 것만 아니라 계획이나 성과, 평가 내용을 사전 사후에 잘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가장 크게 고민하는 점이 있다면요?

 

기본을 지키는 것, 원칙적으로 일을 하자는 것이에요. 올해로 제가 재단에 다시 온 지 3년 정도 되었어요. 그사이 새로운 파트너를 찾고 협업하고 그랬는데 좀 힘든 일들이 있었어요. 잘 안돼서 중간에 종료한 경우도 있고.

 

가만 보니까 뭔가 결정할 때 복잡해지는 게 안 좋은 것 같더라고요. 우리가 불리한 계약을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못 하겠다고 말하고, 프로젝트 설계가 잘못되었다 싶으면 사전에 수정하고 그래야 해요. 급하게, 일단 빨리하려고 덤비다가 체한 경험이 많았어요.

 

그러게요. 하다가 어떻게 조절하면 되겠지, 하는 순간이 있죠.

 

네. 우리가 서로 모르는 것도 아니고, 잘하겠지, 그러다가 문제가 되었을 때는 참. 그래서 ‘내가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걸 지키면서 일하자’,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올 상반기에는 일을 별로 못했어요. 휴점 상태냐는 얘기도 들을 정도로. 그렇더라도 인건비도 안 나오고 막 프로그램 돌리는 그런 소모적인 일보다는 우리가 하고 싶은 사업, 오랫동안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후원받을 수 있는 사업에 집중하고 싶어서 고민하고 있어요.

 

이제 2년 뒤면 재단이 20주년을 맞아요. 새롭고 아직 남들이 안 하는, 꼭 필요한 영역을 찾아서 밀착되게 지원하는 게 그동안 재단이 지켜온 스타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재단 자산을 가지고 5년 뒤, 10년 뒤에도 조직이 잘 버티고 성장할 수 있을지도 고민인데, 저는 조직을 지속하는 것 자체를 고민하는 것보다는 혹시 지속하지 못하더라도 이것만큼 꼭, 우리가 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사업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 구성원이 조직에 있는 동안 좋은 일 경험을 해서 나중에 다른 데로 가더라도 잘 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쨌든 우리 조직에 왔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적어도 2~3년은 일하면서 잘 성장해서 자기의 힘은 갖고 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제가 알려줄 수 있는 건 알려주려고 해요. 그러면 만약 어떤 사정으로 떠나더라도 거기서 자기 방식으로 일을 하면 되니까요.

 

그런 상황이 오면 난실님 개인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저는 올해 딱 40인데, 그동안 출산휴가 빼면 한 번도 쉬지 않았어요. 그치만 50대가 되어서까지 조직에 매어서 일할 것 같지는 않아요. 주변에 40대 중반 지나면서 50대 준비하는 선배들에게 물어보면 그 누구도 50 넘어서도 조직에서 일할 거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러면 그때 뭘 할지 준비를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먼저 40대 중반을 겪고 있는 언니들한테 빨리 경험해보고 알려달라고 하죠. (웃음) 아이들을 키우니까 돈을 벌지 않을 수는 없는데, 그렇다고 이제는 영리로 갈 것 같지는 않고…

 

어쨌든, 제가 맨날 얘기하지만, 결과적으로 저는 직장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근데 그게 비영리였던 거죠. 적정 수준의 일과 나의 삶의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었고, 가치관에도 잘 맞았어요. 나중에도 그런 수준에서 선택하지 않을까요?

 

비영리 일 경험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다면 뭘까요?

 

어떤, 거창한 수준에서는 아니고 그냥 지금의 제 역할, 위치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내가 내키지않는 건 다른 직원에게도 강요하지 말자, 그리고 나 자신도 내키지않는 건 하지 말아야겠다는 거예요. 일 자체의 성격이든 일하는 방법에 있어서든.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뭐예요?

 

비영리 일은 설득의 과정인 거 같아요. 그런데 내키지않은 일을 나랑 분리해서 진행하다 보면 어느 단계에서는 턱을 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스스로 부끄러워질 때도 있고..리더의 위치에 와서 더욱 생각하는 부분인 거 같아요

 

그 방식은, 비영리여서 가능한 걸까요? 성과를 중시하는 영리 분야에서는 쉽지 않은 방향일 수 있잖아요.

 

비영리여서 가능하다기보다는, 비영리기 때문에 그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하면서, 권난실은 “기소불욕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이라는 구절을 언급했다. 중국 춘추시대 유학자인 공자의 가르침을 담은 [논어]의 한 구절로,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는 뜻을 가진 말이다. 처음엔 갸우뚱했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드는,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되려 타인을 억압하거나 무리한 사업을 벌이는 함정에 빠져드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개인이나 조직이 아무리 선의를 갖고 있다 해도, 활동에 깊이 몰입하다보면 목적이 중요한 만큼 그 수단도 목적에 부합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거나 외면하기 쉽다. 기존 시민사회운동이 약화하고 혁신을 키워드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비영리 영역의 현실 속에서, ‘기소불욕물시어인’에 기반해 권난실이 보여줄 새로운 리더십은 과연 어떤 색깔로 드러날지, 설렘과 기대를 숨길 수가 없다.

 

 

그 생각대로 펼쳐나갈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하네요.

 

그래서 주위에서 자꾸 물어요. 너의 색깔을 담은 사업은 언제 나오냐고.

 

그럼 뭐라고 해요?

 

일단 기다려보라고 하죠. 하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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