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고유함을 담는 활동가, 장재원


인터뷰 취지[활동가인터뷰]는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의 일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인터뷰 형식을 빌어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 전까지 꾸준히 업데이트될 예정입니다. [활동가이야기주간]은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활동을 통한 변화 사례를 공유하기 위한 전국적인 대화 모임 주간으로 2019년 11월 4일(월)~8일(금)까지 5일간 전국 곳곳에서 진행될 예정입니다.
인터뷰 날짜
글쓴이재은. 직장을 그만두고 조금 다른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평일 오후에 수영을 배웁니다. 물 속에서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집중합니다. 가끔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데요. 시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좋아합니다. 내 속도대로, 자연스럽게 흐르는 하루가 소중합니다.



지역이 희망을 만들려면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움직임이 필요합니다. 여러 작은 시도 중 하나가 잡지를 만드는 일이 아닐까 합니다. <월간옥이네>는 ‘오늘의 이곳을 기록하는’ 지면을 넘어 지역사회의 ‘균열과 이상’을 만드는 실천도 함께 해나갈 계획입니다.

 

다른 지역에 취재를 가면 인구 5만여 명의 군 단위 지역에서 월간지가 나오는 것을 신기해하고 부러운 시선을 보내주시곤 합니다. 만드는 사람보다는 잡지가 나올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온 옥천 주민들이 받아야 할 칭찬입니다. 

<월간옥이네> 2호 여는 글 (장재원). 2017년 7월   

 

 

영등포에서 기차로 2시간, 대전을 지나 논밭이 펼쳐질 무렵 옥천에 도착했다. 옥천은 충청북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기차역은 조용하고 작았다. 보따리를 든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앉아계셨다. 기차역을 벗어나 조금만 걷자 시장이 펼쳐졌다. 옥천에 올때마다 장날이다. 박작박작한 시장풍경이 정겹다.  

 

옥천을 알게 된 건 기자를 준비하는 친구를 통해서였다. '옥천신문'이란 지역신문이 있는데 1989년에 만들어져서 지역사회를 밀도있게 담는다고 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지역단위로 번진 움직임이 언론으로 이어진다는 게 놀라웠다. 우리가 발 붙이고 사는 공간, 함께 사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는다니. 언론과 민주주의의 관계가 새롭게 다가왔다. 언젠가 가보고 싶어졌다.  

 

시간이 지나 다른 친구에게 <월간옥이네>를 선물받았다. 옥천의 땅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은 잡지였다.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인연인 모양이었다. 2017년 가을, 우연한 기회로 <월간옥이네> 취재를 따라 나섰다. 옥천에 남아있는 오래된 산성에 대한 취재였다. 높지 않은 산을 오르니 구불구불 흐르는 강이 펼쳐졌다. 아름다웠다. 자연만이 아니다. 옥천에서 만난 사람들이 두고두고 떠올랐다.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반겨주던 <월간옥이네> 편집장 재원씨(현재 '고래실' 편집인, 기획협력국장) 이야기가 궁금했다. 이참에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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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장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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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언론의 기능

 

옥천신문은 옥천군을 주된 배포지역으로 하는 지역 주간 신문사이다. 지역주민의 평범하고 따뜻한 일상을 소개하는 기사부터 자치단체 행정을 비판, 감시하는 기사까지 지역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을 보도하고 있다. 재원씨는 옥천신문에서 2009년 여름부터 2017년 여름까지 8년 간 근무했다.  

 

 

어떤 계기로 옥천신문에서 일하게 됐나요?

 

“저는 대전에서 태어났고, 대학에서 언론정보학과를 전공했어요. 전공 수업에서 교수님이 옥천신문을 소개해주셨어요. 저널리즘의 기본을 제대로 하는 곳이라고. 궁금해서 옥천에 한 번 왔어요. 그게 인연이 되었죠. 

 

학창 시절엔 서울 가는 게 목표였어요. 대학생 때 스웨덴으로 연수를 가거나 호주 워킹홀리데이, 필리핀 어학연수를 다녀오면서 느낀 것들이 많았어요. 제가 있던 곳이 다 수도가 아니었는데요. '지역에서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구나' 알았어요. 또 옥천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분들이 있구나' 알게 됐죠. 지역에 할 일이 많다는 것도요. 그래도 갈등을 많이 했어요. 지향점은 지역이라 해도 중앙지 기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랬겠어요. 어떤 대학시절을 보냈나요? 

 

“2학년 때 학번 신문을 만들었어요. 제가 02학번인데요. 02학번의 소식을 담는 신문을 만든 거죠. 언론이라는 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그걸 통해 조직이나 문화가 바뀌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편집회의를 빙자해 만날 일이 없던 동기들을 만났어요. 모든 동기들이 답 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들면서 연결고리 역할을 하려고 했었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내 주변에 적용하면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게 노력했어요.

 

병역 의무를 마치고 3학년으로 복학 했을 때는 학과 웹진을 만들면서 바빴어요.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사람들 간에 소통이 어렵더라고요. '뒤에서만 얘기하지 말고 우리가 한 번 만들어보자. 작은 단위에서 해보자' 싶어 웹진을 만들었죠.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지금도 학내에서 이어지고 있어요. 이런 활동이 재밌다 보니 막상 언론사가 요구하는 시험 준비를 많이 하지 못 했어요.”   

 

내가 발 붙이고 있는 곳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언론정보학을 전공했으면 주변에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도 많았겠어요. 

 

“네. 지금 옥천신문 황민호 제작실장이 대학 선배예요. 3학년 여름방학 때 옥천신문에서 인턴을 했어요. 선배들 취재를 따라다녔는데 막연하게 듣던 것을 넘어 제대로 된 기자생활을 경험하게 된 계기였죠. 선배 활동이 인상적이었어요. 선배가 청산면(옥천군에서 가장 먼 면소재지)에 살 때 였는데 그러면서 선배가 지역활동가로 역할하는 것을 보게 됐어요. 청산초등학교 도서관이 저녁 6시가 되면 문을 닫는 거예요. 아이들이 갈 곳이 없는 거죠. 도서관이 저녁시간에도 열릴 수 있게 기사를 냈고요. 학부모들을 자원봉사자로 연결해서 야간에 개방하는 방법을 마련했어요. 주민과 밀접하게 호흡하고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저도 참여하게 됐죠. 기사 지면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기자를 만나니까 나도 여기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어요.

 

기자는 어디 출입처 가고 술자리에서 고급 정보 받아 기사 쓰는 역할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 편견을 깨는 시기였어요. (옥천)신문사 공고 났을 때 주저 없이 지원했어요.”  

 

기자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되네요. 

 

“신문사 와서 그런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했어요. 글만 쓰는 기자가 아니라 사람들과 호흡하고 사회를 바꿔나가고 만들어가는 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져야겠다고.”   

 

실제 일해보니 어땠어요?

 

“저는 저 나름의 방식으로 했어요. 기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다른 것도 할 수 있으니까 기본에 충실하려고 했어요. 물론 중간중간 힘들었어요. 입사한 지 1년 만에 그만두겠다고 했었어요. 제가 기사를 꼼꼼하게 쓰다 보니 많이 느렸거든요. 부담이 됐어요. 신문을 혼자 만드는 게 아니라 제가 늦어짐으로 해서 모두가 늦어지니까요. 스스로 높은 기준을 세워서 거기에 못 미치니까 '이게 아니지 않나, 내가 도움이 되지 않는 거 아닌가' 어려웠고요.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원으로 더 편해진 계기가 됐어요. 

 

신문사 노조 활동도 했어요. 이미 선배들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현안이나 활동을 했거든요. 자연스레 제가 노조 대표를 맡았죠. 옥천노동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연대체 만드는 과정도 참여했어요. 특정 이슈가 생기면 해결하기 위한 자리도 열었고요.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을 해보자고 한 게 지금도 이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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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장재원)

 

 

2. 지역에서 문화기획자로 살기  

 

재원씨는 옥천신문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2017년 여름, 뜻맞는 사람들과 함께 '지역문화활력소 고래실'을 시작했다. '고래실'은 옥천의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콘텐츠를 발굴, 활용하는 문화기획 사회적기업이다. 농촌 잡지인 <월간옥이네> 발행부터 복합문화공간 운영, 지역마을 여행, 출판 및 디자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래실'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요? 

 

“지역에서 문화기획을 하는 그룹이 없었어요. 대부분 대전이나 외부에 외주를 주는 형태였어요. 그렇게 외주로 작업하는 것들이 지역을 제대로 표현하는지 문제의식이 있었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옥천을 알려보자는 논의가 있었어요. 한편으로 신문이라는 활자매체가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속가능성을 담보할지 고민이 됐어요. 처음에 신문사 문화콘텐츠 사업단으로 출범했어요. 굳이 따지면 저는 사업단으로 파견을 가서 일을 한 거였는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안 됐어요. 별도의 법인을 만들 수밖에 없었거든요. 신문사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는데 새로운 조직이 만들어지면서 지역의 색깔을 더하면서, 자생력을 가지기 위한 과정을 거치고 있어요.”  

 

고래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어요?

 

“저는 2년 동안 월간옥이네 편집장을 맡았었고 지금은 기획협력국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조직을 운영하는 등의 살림살이를 맡고, 문화사업을 기획하고 영업도 해요.”   

 

기자생활과 다른 경험을 하게 된 거네요. 

 

“신문사 나오기 1년 반 정도는 지금의 역할을 했었어요. 팔을 다치면서 필드에서 벗어나 새롭게 리프레시가 필요하던 시점에 업무 조정이 됐었어요. 그때 맡은 역할이 취재 말고 편집하는 역할, 실제 지면 편집이라든지 전체 지면의 레이아웃을 구성했어요. 또 신문사에 총무국이 부재한 상황이었거든요. 신문사의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고 기반을 잡는 역할도 했었죠. 

 

그땐 본연의 역할은 아니었고 주어진 필요에 따라 맡게 된 거였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현장으로 돌아갈 것인지 내부살림꾼의 역할을 할 것인지를 고민했어요. 마침 새로운 기회가 생긴 거예요. 고래실을 통해 월간옥이네 편집장으로 현장에서 글을 쓸 기회가 생겼고, 살림을 돌보는 역할도 하게 됐죠.”  

 

몸 담고 있는 조직이 바뀐 거지 업무의 성격은 크게 변하지 않은 거군요. 

 

“네, 문화기획자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긴 한데 전에 하던 일과 크게 다르진 않아요. 기자로서 기사를 쓰는 거나 문화기획자로 일을 하는 거나, 지면이냐 실행이냐 현장이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지향을 가지고 일을 하다 보니 큰 차이를 안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도 지역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 리프레시가 필요할 때가 있지 않아요?  

 

“제가 지금 하는 일을 통해 리프레시돼요. 글을 쓰고 기사 쓰는 건 좋아하는 일이지만 굉장히 무거운 일이기도 했거든요. 어느 정도 고갈이 된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더 잘 쓰기 위해서는 지역의 다른 활동이나 다른 시간을 통해 충전이 되어야,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맞아요. 글을 쓴다는 건 무거운 일인 것 같아요. 

 

“지역신문 기자가 부담을 안 가지고 하면 정말 쉽게 할 수도 있어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무한대고요. 기자의 역량이 지역의 역량이라고 스스로들 얘기할 정도였는데, 내가 공부가 안 되어 있으면 지역 현안은 그 이상을 못 벗어난다는 거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하려다 보니 봐야 할 것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주어진 여러 가지 일은 많아지는 상황에서 제 기준만큼 온전하게 쓰기가 어려웠어요.  

 

지금 고래실에서 일하는 것도 그렇고. 지역문화운동의 일환으로 지역의 구성원이자 주체로 일을 하고 있고, 궁극적으로 저희가 하는 여러 일들이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되는 일이라 믿어요. 저를 지탱하는 힘이고요.”  

 

힘든 건 없으세요? 

 

“일상적으로는 힘들 때가 많아요. 고래실에서 일하면서 생전 해보지 않던 영업을 해야 하고요. 취재원으로 만난 사람들하고 관계가 바뀌죠. 소위 기자로서 만난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그쪽 요구를 잘 듣고 부응하는 일이어서 낯설었어요. 이 조직이 자리를 잡으려면 해야 하는 과정이고 주어진 역할이라 생각하면서 하고 있어요. 

 

고래실이 만들어진지 2년 반이 됐어요. 정부의 사회적 기업 지원으로 운영하는 상황이에요. 5년 차엔 지원이 마무리가 되는데요. 남은 2년 반 동안 자생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해요. 제가 해야 할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 고래실이 잘 자리 잡는 게 지역에 도움이 되는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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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장재원)

 

 

3. 지역에서의 쓸모에 대해 

 

재원씨는 지역에서 여러 일을 벌이고 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알고, 그 역할을 맡아 충실히 하는 것이 지역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아서일까. 지역에 대한 애정일 것이다. 인터뷰 중에도 여러번 울리는 전화만으로도 얼마나 바쁜지 알았다.  

 

 

옥천에서 이런저런 일을 많이 하고 계신 것 같아요. 

 

“지역에서의 쓸모를 생각해요. 개인적인 관심과 연결되는데요. 교육문제에 관심이 많아요. 학창 시절에 홍세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의식을 규정하는 여러 가지 중 중요한 두 가지가 교육과 언론이라는 걸 알았어요. 세상을 바꾸려면 언론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전공도 했고요. 한편으로 늘 교육문제를 어떻게 바꿀까 고민하고 있어요.”  

 

구체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도 있나요? 

 

“옥천행복교육네트워크라고 지역교육 의제를 발굴하고 지역교육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가 있는데요. 그곳 사무국장이기도 해요. 모임은 3-4년 전부터 해왔고 작년 5월에 창립했어요. 

 

주요하게 관심 갖는 의제는 청소년 공간이에요. 한 달에 한 번씩 탐방을 가고 강의를 듣고 자체적으로 모임을 가지고 토의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오래된 옥천교육도서관을 청소년 복합 문화공간으로 바꾸기 위해 목소리 내고 있고요. 지역 아이들이 갈 수 있는 다양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무국장을 맡고 계시다고요? 몸이 두 개라도 부족한 거 아니에요? (웃음)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는 과정이에요. 옥천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고, 지역에서 꾸준히 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내가 있는 위치에서 무언가를 지속하는 것이 대단하구나’ 느껴요. 제가 잘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려고요. 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농민 운동하는 분들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싶거든요.”  

 

옥천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옥천의 장점은 이런 고민을 함께 할 사람들이 여럿 있다는 점이에요. 저 혼자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숟가락 하나 얹어서 힘을 보태는 건데. 같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도 같이 하는 거잖아요. 지역사회의 작은 것이라도 바꿔보려는 사람들, 움직일 여지, 공간이 있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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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장재원)

 

 

조근조근 담담하게 이어가는 말을 듣다보면 시간이 멈춘 것 같을 때가 있다. 재원씨와 대화는 유독 그런 ‘정지상태'가 기억난다. 다시 무궁화를 타고 2시간, 대화의 여운을 곱씹었다.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을 계속 품고 있어요. 지금은 글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다는 걸 아니까.”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는 꿈은 내가 발 딛고 있는 옥천의 고유함을 주목하고 발견하는 활동으로 연결된다. 옥천에도, 활동하는 개인에게도 쌓이는 것들이 보인다. 고래실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인 ‘둠벙’에서 만난 활기찬 얼굴들, 옥천 농부님들(옥천살림)이 직접 만든 식당과 맛있는 점심, 언제든 옥천에 내려오라는 활동가분의 권유, 뿌듯함이 느껴지는 여러 눈빛을 보며 생각했다. 꾸준히 활동하는 힘은 어디 멀리 있지 않다. 만나는 곳곳에 담겨있다. 든든해지는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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