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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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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공동체 매개자로 즐겁게 살아가기! - 화천 상서리 마을카페 박현수 활동가

양진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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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화창한 여름 아침, 길을 나섰다. 춘천에서 5번 국도를 굽이굽이 따라가다 보면 눈 깜짝할 사이 38선(!)을 훌쩍 넘는다.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화천은 북위 38도 너머에 위치한 대한민국 최전방의 산촌이다.

달리는 창밖으로 짙푸른 호수 파로호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순간, 박현수 활동가를 처음 만났던 2018년 소셜리빙랩의 추억들이 되살아났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한 국민참여 사회문제해결 프로젝트, '국민해결 2018'에서 '아낌없이 주는 학교'가 선정되었고, 그는 그 힘든 일을 기획에서 실행까지 전과정을 책임진 백만불의 사나이로 기억된다.


** 사진 1. 박현수 활동가


화천에 귀촌한 지 11년차, 그의 전공은 기계공학이었다(사실 만나서 10분만 이야기해보면 뼛속까지 문과가 확실하건만!), 졸업 후 방송과 영화연출, 홍보, 기획, 콘텐츠 관련 일을 했었는데, 그땐 시쳇말로 쫌 잘 나갔었다. 동료들보다 먼저 승진도 하고, 은행잔고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성과를 향해 달리는 자신이 견딜 수 없을만큼 초라해지는 순간들이 자꾸 반복되었다. 결국 깊은 고민 끝에 귀촌을 결정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화천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다. 뭐, 어차피 서울도 고향은 아니었으니까.

우연히 들렸던 화천 상서리에 둥지를 틀게 되고, 화천을 천천히 알아가면서, 그는 그동안 마음속으로만 그려온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보고싶었다. ‘아,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삶의 열정이 다시금 가슴에서 말을 걸어왔다.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마을회관은 그의 꿈을 현실화하는 좋은 공간이 되어 주었다. 그곳에 마을카페를 열고 주민 미디어교육, 청소년 방과후 프로그램, 어르신 독서모임 등 다양한 시도를 11년째 해오고 있다.

그가 꿈꾸는 마을공동체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증을 도무지 견디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질문을 퍼부었는데, 해탈한 철학자처럼 쉽게 이야기를 풀어주신다.


Q. 서상리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지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세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 할지 참 어려운데요. 저는 ‘마을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장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 다들 안 믿어요. 그도 그럴 것이 제가 카페에는 거의 없거든요. 저는 매일 매일 사람들을 만나러 나갑니다. 우리 마을엔 참 일도 많아요.”


Q. 어떤 일을 하시는데 그렇게 바쁘게 다니세요?

“사실 알고 보면 마을카페와 다 연관이 되어있는 일이에요. 카페에서 사람들은 차도 마시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이거든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이해하고, 기뻐하고, 보듬어주고, 그러다가 새로운 일도 도모되고... 저는 그게 ‘마을카페’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공간을 만들기 위해 카페를 시작했습니다. 여기 카페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많아졌어요. 

청소년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교육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3년째 매주 목요일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시민단체 모임도 이곳에서 준비하고, 또 최근에는 지역의 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예술인 자립과 문화 확산을 위한 협동조합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습니다. SNS 활동도 빠질 수 없죠. 페이스북 그룹 ‘화천사람들’을 이곳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자신을 위해서, 마을 아이들을 위해서 작은 목공방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매일 만나고 문제를 이야기하고 해결책을 도모하고... 하루해가 짧습니다.”


Q. 정말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시는군요! 몸은 하나인데 어떻게 시간 배분을 하세요?

“영화를 예로 들어 볼게요. 영화는 24장 요즘은 30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져 그 사진들이 연속으로 보여지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거죠.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사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진과 사진 사이에 있는 거에요. 한 여인이 전화 받는 장면 뒤에 눈물 흘리는 장면이 나오면 우리는 ‘아~ 슬픈 일이 생긴 거구나~’라고 상상하거든요. 

제가 집중하고 있는 부분은 이 지점입니다. 진짜 활동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라는 정현종 시인의 ‘섬’이라는 시가 있죠? 저는 이 시를 참 좋아합니다.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어떤 일,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다 보면, 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어떤 ‘사건’이 생겨나죠. 교육을 걱정하는 사람들과 만나면 새로운 교육활동이 생겨나고, 문화에 목말라 하는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또 새로운 섬이 나타납니다. 저는 그것을 즐기고 있는 거죠.”


Q. '소통'을 그렇게 정의하시는군요?

“요즘은 ‘활동가’라는 표현을 참 많이 쓰더라고요. ‘활동가’라는 표현 속에는 의도적인 의미가 많이 있어요. 앞에서 끌고 나가는 거죠. 저는 개인적으로 ‘활동가’라는 표현보다는 ‘매개자’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아무리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있더라도 문화 분야에서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문화’라는 속성 자체가 ‘함께 향유하는 것’이거든요. 의욕적인 활동가들이 중간에 지쳐 쓰러지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혼자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다 지치는 거죠. 

하지만 ‘매개자’는 다릅니다. 자신이 뭔가를 해 나가는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뭔가를 할 수 있게, 아니 소통을 통해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게 연결만 해 주는 거죠. 내가 굳이 뭔가를 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방향이 같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모임만 만들어주면 반드시 변화는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섬’이 생겨나면 우리는 함께 그것을 즐기면 되는 거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섬을 찾아가는 ‘매개자’. 이 매력 넘치는 매개자를 행정안전부 ‘2018 국민해결’ 사업팀이 놓칠 리가 없다. 다양한 마을사업을 진행하던 그는, '아낌없이 주는 학교'가 소셜리빙랩 프로젝트로 선정되면서 그는 가장 바쁜 화천군민 가운데 한 사람으로 회자되고 있다.


** 사진 2. 2018년 시작된 화천 사회적연대 프로젝트 '아낌없이 주는 학교'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민해결 2018' 프로그램은 지역의 문제점을 시민들이 직접 해결책을 제시하고 해결해보는 프로그램이에요. ‘아낌없이 주는 학교’는 잘살거나 못살거나 부모나 맞벌이거나 한부모가정이나 조손 가정이건 공평하게, 마음 편하게 교육을 받게 해보자는 취지로 출발한 지역 학부모들이 만든 학교입니다. 물론 정식 학교는 아니고 지역 주민들의 모임인데요. 학교 수업이 끝난 이후의 교육은 그동안 각자 부모에게 맡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부모들이 여건이 좋으면 자녀들은 사교육, 문화생활, 견학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겠죠. 

그러나 반대로 그러한 여건이 안 되는 가정들이 있습니다. 부모가 다 농사를 짓는다든지, 맞벌이 부부, 조손 가정 등의 아이들은 그냥 방치되고 있습니다. 화천에는 그런 가정이 훨씬 더 많죠. 사실 서울과 지방의 교육격차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같은 동네 내에서 벌어지는 격차거든요. 그동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자체나 교육기관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여전히 교육 사각지대에 있는 아이들이 많은 것이 화천의 현실입니다. 지역의 아동이면 누구나 공평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슬로건 아래 마을주민들이 힘을 합쳤습니다.”


Q. ‘아낌없이 주는 학교’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 주세요. 학교의 운영방식도 궁금합니다.

“화천은 서울보다도 면적이 굉장히 크지만 인구가 적죠. 그러다보니 대부분 자가용으로 이동을 합니다. 그래서 어른들은 불편을 못 느끼지만 아이들은 불편합니다. 누가 태워다주지 않으면 꼼짝없이 집에 있어야 하는 겁니다. 농촌버스가 있지만 하루에 두세 번 정도 운행하기도 하고 버스요금도 비싸고요. 막차도 6시 정도면 끝납니다. 학교 끝나고 시내에 나와서 뭔가를 배우려고 해도 누군가 태워주지 않으면 그림의 떡이죠. 꿈이 있어도 전적으로 어른이 매달려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아이들이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이런 문제를 고민하다보니 나온 방안입니다. 그동안 교육은 교육시키는 사람이 강좌를 개설하면 아이들이 신청해서 교육을 받는 공급자 중심의 형식이었는데요. ‘아낌없이 주는 학교’는 수요자 중심입니다. 아이들에게 뭘 배우고 싶냐고 묻고 그걸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어른들이 모여서 같이 고민하고 과목을 개설해주는 겁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마음껏 참여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태워다줍니다. 대부분 그 동네의 학부모들이 ‘희망매니저’라는 이름으로 태워다주고, 중간에 간식이나 밥도 먹여주고 끝나면 집까지 데려다주는 겁니다.”


Q.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만든 교육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학생들의 반응도 궁금해요.

“아이들의 의견을 모아 5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요.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으로 드럼을 배우는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열 명 정도가 드럼 하나가지고 배우니까, 한 5분정도만 칠 수 있는 거예요. 드럼을 마음껏 치고 싶다고 해서 ‘드럼반’을 개설했구요, 또 ‘방송댄스’를 배우고 싶다는 아이들을 위해서 ‘댄스반’을 만들었어요. 시골학교는 한반에 4~5명밖에 안 되는 학급이 많아서 축구를 하기가 어렵습니다. 전체를 다 모아서 ‘축구팀’을 만들고, 어떤 아이들은 동네 할아버지에게 멋진 의자를 만들어드리고 싶다고 해서 목공 프로그램도 만들었어요. 참, 로봇 만들기 프로그램을 빼놓을 수 없어요. 아주 반응이 뜨거웠어요.”


Q. ‘희망매니저’ 라는 명칭이 참 재밌네요. 마을의 부모들이 직접 나서서 활동하는 방식이라는 게 인상 깊어요. 다른 부모님들도 안심이 될 것 같고요.

“이번 프로젝트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이들을 열정을 다해 보살펴주는 희망매니저를 모집하는 일이었는데요. 정말 걱정이 많았습니다. 일주일에 3~4번 저녁시간을 투자하는 게 쉽지도 않고, 더군다나 먼 곳은 오는 데만 40km 정도 됩니다. 차로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죠. 그런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셨습니다. 그만큼 지역아동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멋진 분들 덕분에 본 사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감사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 사진3. ‘아낌없이 주는 학교“를 이끄는 힘, 희망매니저님들과 함께


Q. 지역의 교육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 멋진 주민들이 계셔서 지역의 상황은 어렵지만 그래도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에 지역활동가로서 현실적으로 겪는 어려운 점도 분명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움은 매일 다가오죠. 우선 먹고 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소득의 시대가 조속히 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다움을 버려야 하는 시대를 살고 있잖아요? 그 중간의 어느 지점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하루속히 기본소득정책이 실행되어 삶의 균형잡기가 좀 더 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Q.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우리의 교육은 어떻게 변할까요?

“위기가 닥치면 언제나 핵심만이 남게 됩니다. 이번에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에 안 가니까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게 됐잖아요? ‘학교의 의미는 뭐지?’ 그도 그럴 것이 지식은 집에서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거든요. 학교의 존재 의미가 지식습득이 아닌 것을 알게 된 거죠. 앞으로 학교의 돌봄 기능이 점점 더 부각될 겁니다. 

배움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고, 아이들의 변화를 선생님들이 따라가지 못 할 겁니다. 선생님들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컨설턴트 역할로 빠르게 변할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육청’도 ‘배움청’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수직적 관계인 ‘교육’의 시대는 끝나고 스스로 하는 ‘배움’의 시대가 올 겁니다. 생산자 중심이 아니라 소비자 중심이 되는 거죠. 이미 사회에서는 끝난 실험인데, 교육계에서는 이제 시작되는 겁니다.”


우문현답이다. 지역 활동가를 인터뷰하겠다고 달려왔는데, 노련한 철학자를 만나서 삶의 방향을 묻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즐거운 보너스가 기다리고 있을 줄이야. 여전히 어리석은 인터뷰어는 그(분!)에게 내일의 꿈을 물었다. 또 한 번 감동을 주실 줄 믿고.


“저는 즐거운 소통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조금 더 바란다면, 다른 지역의 ‘매개자’들과도 소통하고 싶어요. 지역에서 활동하다 보면 의도치 않은 여러 어려움들이 발생하거든요. 사정은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고충을 함께 만나서 나누면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즐거운 활동이 되지 않을까요?”


** 사진 4. 인터뷰 현장, 박현수 & 양진운


인터뷰어 양진운 : 오랜 시간 국제개발협력사업을 기획하고 운용해왔다. 현재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가르치는 선생으로, 자전거 타는 지구별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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