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하는 마음과 선한 영향력을 이야기하는 활동가, 아름다운가게 혜영

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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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따뜻한 사람이 있다. 늘 자신보다 주변의 이웃에게 더 마음을 쓰는 사람. 혜영은 언제나 가장 여리고 약한 곳을 향하는 사람이다. 그런 혜영을 만나러 6월의 더운 어느 날, 전라선을 타고 광주송정역으로 향했다.

- 어디래? 몇 시 도착한단가?

만나기 전날부터 내가 기다릴까 약속시간과 장소를 꼼꼼히 정하던 혜영에게 깜짝 선물을 하고 싶어서, 일부러 도착시간을 늦게 알렸다. 꽃을 좋아하는 혜영에게 줄 카라와 수국을 섞어 안고 기다리는데, 마스크로 얼굴을 반 넘게 가린 사람들의 틈에서도 혜영을 금방 알아봤다. 큰 그림을 손에 들고 낑낑대며 오는 저 사람, 언젠가 그녀가 그린 그림이 참 근사하다고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그것을 또 기억하고 챙겨왔다. 혜영은 늘 이렇다. 자기가 가진 것을 아끼지 않고 다 퍼주는 사람. 더 주지 못해서 동동거리는 사람.

광주에서 유명하다는 피자와 파스타를 파는 레스토랑에서 눈이 휘둥그레 졌다. 남도 음식 유명하다더니, 피자와 파스타도 이렇게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듬뿍한 것이 첫 번째. 그리고 혜영의 선물해준 그림에 두 번째. 볕이 따가운 초여름에 땀이 송글송글 했는데, 그림을 보니 아직도 봄이다.

<손재주가 매우 좋은 혜영이 그린, 벚꽃길. 분홍이 가득하다.>

 

Q. 이번 5월은 광주를 못와봤어요 코로나19 때문에 행사는 안했죠?

아무래도 그렇제, 하던 만큼은 못하고. 그래도 뭐 아예 없이 지나가진 않았고. 티비에서 보니까 대통령이 묵념도 하고 하더만. 여기 사는 사람들이야 뭐 늘상인거니까..


Q. 아름다운가게는 좀 사정이 어때요? 매출 많이 떨어졌겠다.

뭐 전체적으로는 한 20% 정도 떨어졌다 하던디.. 근데 가게는 좀 사정이 나아. 광주에 마을기업이나 자활센터 같이 행사 많이 하는 곳들은 타격이 꽤 있나 보드라고. 아, 기증은 엄청 늘었다. PP박스가 열 개가 찰 때도 있는디. 참… 기증자들 생각하면 항상 감사해. 기증은 정말 어려운 일이니.. 봐봐, 하나하나 애정을 갖은 물건들 다 깨끗이 다듬고, 싸서 기증해주는 거 얼마나 고마운 일이란가. 값이 많이 나가지 않더라도 기증하는 분들이 곱게 그렇게 가져와주시고.. 또 그 물건 사연 듣고 하면 행복하지, 난 아직도 그럴 때 울컥해. 

 

이제 곧 12년 차가 되는 혜영은 여전히 기증자들 앞에서 마음이 울컥한다고 한다. 하나하나의 물건을 정돈하여 오는 그 마음, 더 좋은 곳에 쓰이길 바라는 그 선한 마음들.


 

Q. 벌써 12년이잖아요,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한 지도. 아무래도 관성화 되는게 있을텐데.. 아직도 그렇게 좋다는 너무 신기해, 뭐가 그렇게 좋아요? 

(웃음) 아니, 퇴사자가 그게 왜 궁금하단가 (웃음) 그렇지, 관성화되고 무뎌지는게 있지. 모든게 익숙해지고 그러다보면. 설렘이 줄지. 근데 나는 기증물품 받아서 팔고 그 돈으로 이 지역 어려운 사람들, 더 힘들지 마라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고. 이게 참 좋아. 그리고 일상적으로 캠페인을 하잖어. 교육도 하고. 나눔교육이나 착한 소비, 공정무역, 친환경교육, 이런 게 동기부여가 되고 그렇지. 학교 같은데 가서 달달달 떨면서도 준비해가서. 왜 삶을 살아가면서 이웃과 나누는 게 중요한지, 공익상품 같은 착한 소비, 재활용 재사용 이런게 왜 중요한지, 공정무역을 왜 해야하는지 하는 내용들을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면 뿌듯하지. 나도 많이 배워. 지역사회 공동체로서 뭔가 해보는 거 같고, 떨려. 부족했을지어도 하고 나면 너무 좋은 거야. 내가 한 교육과 활동으로 사회인식이 변화하는 것을 계속 체감하고 있잖아. 난 이 일이 보람있어.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선한 영향력이라고. 나는 이게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 지구를 위해서 좀 더 배려하는 수준으로 쓰레기 줄이고, 분리수거하고, 세제 덜 쓰는 거지. 사람도 마찬가지야. 지금 사정이 좀 어려운 사람, 사회적으로 약자인 노인이나 청소년, 장애, 이런 부분에서 조금 더 배려하는 거지. 대단한 걸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Q.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그럼 아름다운가게가 천직이네요 (웃음)

근데 나는 이것도 좀 헷갈릴 때가 있어. 솔직히 진짜 어려운 사람은 가게 올 수가 없어. 정말 어려운 사람은 가게 문 열어 있는 시간에 일해야지, 어딜 온단가. 열시 반부터 여섯시까지 영업하는 가게는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시간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주로 올 수 있는 거.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가게가 시간을 연장해서 운영하는거, 사실 찬성해. 그래야 일 끝나고 올 수 있지. 생필품도 좀 저렴하게 사고 할 수 있잖아.

 

아름다운가게 매장이 연장영업을 한다는 것은 매장의 매니저가 연장근로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혹은 매장 영업이 끝날 때 까지 계속 핸드폰을 쥐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연히 연장영업을 싫어할 줄 알았는데, 사회적 약자가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찬성한다는 혜영님. 천상 활동가다.


"아름다운가게는 누구나 마음 편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야. 물건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보다 마음이 외로워서 오는 사람들이 많제. 큰 화두가 없어도 늘상 하는 얘기하고, 안부 묻고, 이러면 얼마나 좋아. 요즘 어디서 이럴 수 있겠는가."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아름다운가게에서 만나 옷 어울리나 봐주고, 안부를 묻는다. 늘 비슷한 시간에 오던 어르신이 안오면, 어디 몸 아픈 거 아닌가, 돌아가신 건 아닌가 하고 모두가 걱정한다. 다양한 사람들이 아름다운가게라는 공간 안에서 만나,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 또 받는 관계. 혜영은 아름다운가게 안에서 맺는 관계와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자신이 12년 동안 활동할 수 있는 주요 힘이라고 한다.

 

Q. 아름다운가게에서 일하기 전에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네,  어릴 적 얘기 해줄 수 있어요?

나? 난 완전 또라이였어 (웃음) 학교다닐 때 선생님 말은 잘 들었는데, 또라이였어 (웃음) 하기 싫은 건 절대 안하고. (웃음) 어릴 때 내성적이고 조용했는데,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웃기지? 혼자가 익숙하고. 그래서 뭘 하든 혼자 그냥 하고 그랬어. 근데 대학에서 성격이 다 바뀌어부러, 대학에서는 자유롭잖애. 나는 사회복지학 공부했는데, 하고 싶어서 갔다기 보다 그냥 어쩌다보니 간 거 거든.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했어. 여성운동, 청년회 활동, NL 계열 노동운동이라고 하면 이해가 좀 될까?

 

Q. 오, 운동권!  

A. (웃음) 사실 운동을 하긴 했는데 (웃음) 막 철두철미한 신념과 꿋꿋한 철학을 가지고 했다기 보다, 아무것도 몰랐제. 그냥 동아리 기웃거리다가 탈패라고, 탈패동아리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재밋는 거. 어떤 일이든 다 관계망이잖애. 그러다보니 대학시절 내내 운동하고, 졸업하고 나서도.. 운동권에 대한 부채감이 있제. 나는 어쨌든 직장생활다니면서 예전처럼 활동을 안하니까. 나 힘들 때, 내가 어려웠을 때 믿어주고 함께 해줬던 사람들에 대한 의리고 관계망인거지. 

 

"나는 나 죽으면 내 재산 다 시민단체, 사회활동 하는 사람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 그런 활동하는 사람들 덕분에 그나마 세상 바뀌는 거거든. 권력 눈치 안보고, 불같이 사회운동하는 사람들도 필요해. 근데 그런 사람들, 돈 없지, 돈 없으면 운동하기 힘들어."

 

사람과의 관계,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중시하는 혜영의 진정성은 가늠하기도 어렵다. 아름다운가게에 입사하기 전, 사회복지시설에서 근무했던 혜영이, 당시 시설에서 돌보던 3개월 난 아동을 현재 18세가 되어서도 관계하고 있다니, 이만하면 대략 감이 올까. 


"기본을 지키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할 뿐이제. 그냥 난 어느 현장에서 다시 만날을 때, 내가 부끄럽지 않게 활동하는게 철학이야. 과거, 같이 운동한 사람들, 지금도 열심히 사회를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의 얼굴에 먹칠하고 싶지 않애"


일상이 운동이고, 활동인 혜영. 천상 활동가인 그녀의 꿈이 궁금해졌다.

 

Q. 혜영은 앞으로 꿈이 뭐예요? 

나? 난… 농사짓고 살고 싶어. (아니, 갑자기?) (웃음)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 건강하게 하는 약, 건강음료 이런 거 챙기는 것도 좋지만… 난 그냥 환경친화적으로 농사짓고 요리해먹고 그렇게 살고 싶어. 주변에 사람들이랑도 좀 나눠먹고. 건강하고 좋잖애.

 

아직 한창 청년, 그녀의 꿈은 농부라고 한다. 지금도 알이 꽉찬 양파를 보면 장아찌를 담그고, 달달한 무로 피클을 담궈 아름다운가게 자원봉사자들과 나누는 혜영의 꿈은 친환경 농부. 


Q. 오래오래 옆에서 꼭 붙어있어야겠다. 많이 얻어먹게. (웃음) 이제 슬슬 마무리를 하면 좋겠는데.. 이건 꼭 물어보고 싶었어요. 요즘 혜영의 이슈는 뭐예요?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

아이, 다 끝났다면서 또 뭐 이렇게 어려운 질문을 한다니. (네 시간이 넘는 인터뷰에 지친다며 투정을 하던 혜영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난 요즘.. 정의연 사건이 마음이 아퍼. 30 여년 동안의 신념과 철학도 같이 물거품되는 잔인한 상황, 물론 잘못이 있으면 짚고 넘어가야제. 근데 모든 게 다 부정당하고 있는 지금이 개인 그 사람에게는 너무 잔인해. 도덕적 잣대가 정말 형평에 맞는 잣대가 맞는지에 대한 회의도 들고… 난 사실 과거에 같이 데모하고 활동하고 했던 활동가들이 국회의원이라던지 좀 더 사회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지위가 보장되면 더 좋제. 

나는 내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 할 권리가 있고, 그건 타인도 마찬가지겄제. 근데 너는 데모하니까 그런 말을 하면 안돼, 사회운동 한다는 애가 왜 그런 행동을 해, 인권 감수성이 부족하네 창피한 줄 알아야지, 이런 시선은 또다른 폭력일 수도 있어. 나의 언어가 어떻게 표현되고 전달되는가에 대한 지점인데.. 이거 아니면 틀려. 이런 시선은 좀 불편해. 타인에 대해 좀 더 너그러워져야지. 받아들이는 거.. 정말 어렵고 중요한 것 같애.


"동그라미와 엑스로만 구분되지 않는 사회, 세모와 네모도 있고 길쭉이도 인정하는 사회. 좋잖아, 서로의 입장을 인정하는 사회."


노동운동, 페미니즘운동, 환경운동 이런 식으로 범주를 좁혀서 벽을 세울 것이 아니라, 뚜렷한 선을 흐릿하게 만들어서 각각의 운동성을 발현하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환경운동 하는 사람이 왜 분리수거를 그렇게 밖에 못해? 하는 시선이 아니라, 더 잘하는 사람이 방법을 알려주면서 확산해가는 일.

혜영은 사람에 편견이 없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힘을 쏟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한 사람이다. 혜영의 말처럼, 차별이 아니라 포용으로 나아갈 수 있는 사회를 그려보며, 나 역시 일상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유독 웃음이 많고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다. 어쩌면 나는 오늘 여기 광주송정으로 오는 열차에서도 만났을지 모른다. 당장 나의 세상이 먼저 변하고 있다.  


듣고 옮긴 이 : 비영리단체에서 7년을 일하다가, '고인 물'이 되기 싫어서 퇴사했다. 지금은 서울의 중간지원조직에서 지원하고 연결하는 일을 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신념으로 시작했던 영역의 일이, 요즘은 내 작은 일상을 바꾸기도 힘들다는 것을 깨닫고 허우적대고 있다. 그럼에도 일단, 한다.

활동가이야기주간2020 프로젝트의 '활동가인터뷰 공모 지원사업'으로 진행한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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