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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서울] 회의에 회의적인 활동가들 "왜 우리 회의는 이 따위지?" (후기)

10zzung
2020-11-14
조회수 120

사실 이 날은 참석자가 모두 피곤했다. 때마침 야근과 마감이 몰린 시즌이었다. 온다고 했다가 못 오거나 ‘정말 가고 싶은데 아쉽다’는 사람도 많았다. 5명이 꽉 찰 줄 알았는데 아기자기하게 3명이 모여 앉았다.


우리의 모임 주제는 ‘회의’였다. 회의. 여럿이 모여서 의논함. 또는 그런 모임. 네이버 어학사전에 따른 정의다.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렸다. 여럿이 모이기는 하지만 의논은 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면 문제가 늘어난다. 신기한 경험이지만, 다들 겪었던 일이기도 하다.


비영리단체는 ‘민주적인 조직’이라서 더 회의가 많다. 국장회의∙팀장회의∙팀회의에 더해 전체회의도 열린다. 정기적으로 월 1회씩 전체 구성원이 모여 회의를 하는 조직이 많고, 때때로 조직의 중장기 비전 수립, 임금∙휴가제도 등의 노동조건 변화, 기타 중요한 조직적 문제 등에 대해서도 회의가 열린다. 그런데 이 민주주의가 매우 귀찮고 성가시다. 회의 때문에 일이 밀리니까 더 싫다.


이야기모임에 모인 참석자들의 상황도 비슷했다. 다들 회의가 참 싫었다. 회의를 해 봤자 일에 별 도움도 안 되고 오히려 업무가 밀려 짜증난 경험을 다들 갖고 있었다. 때로는 마음을 다치기도 했다. 회의 때 마주한 동료들의 반응이나 조직의 의사결정 방식을 보면서 상처를 받는 것이다.


회의의 뜻은 ‘여럿이 모여서 의논함’, 그런데 공유만 있고 안건은 없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먼저 나온 얘기는 공유사항만 있고 안건이 없다는 것, 그리고 공유할 일과 공유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상황은 대략 이렇다. ①활동가A(팀장회의일 경우 A팀)이 지난주에 어떤 업무를 했고 누구와 미팅했는지, 이번 주에는 무슨 업무를 할 건지 듣는다 ②의견을 말해보라고 한다. 덧붙일 말이 없다. 궁금한 것도 없다. 내 업무와 상관이 없으니까. 질문도 의견도 나오지 않는다. ③신기하게도 종종 누군가는 질문을 하곤 한다. 아무도 말이 없으면, 팀장(팀장회의일 경우 사무국장이나 대표 등)이 코멘트를 한다 ④돌아가면서 이렇게 공유를 한 뒤 안건을 공유한다. 안건이라 해봤자 별 거 없다. 이번 주 행사에서 실무를 나누는 정도다.


한 참석자는 “다른 팀이 행사 준비를 위해 어떤 외부업체를 만나는지 내가 꼭 알아야 하나? 이럴 거면 10분씩 사무국장 방에 들어가서 보고를 하고 나오는 게 낫지 싶다”고 했다. 다른 참석자의 단체는 회의 전에 안건지를 쓰도록 하는 문화가 있는데, 이게 별로 잘 지켜지지 않고 안건지를 써와도 ‘안건’이 아닌 공유사항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가끔 이런 공유 위주의 회의에서도 질의응답이 나올 때도 있다. “이건 왜 이렇게 하시죠?” 문제는 이게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공격적인 ‘태도’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질문의 상당수는 대세에 지장이 없는 내용이다. 행사를 하는데 정작 (빈틈이 많은) 행사의 방향이나 컨셉, 목표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기념품이 ‘우리 조직답지 않다’고 말하는 식이다. 어차피 공짜로 주는 건데 보조배터리면 어떻고 USB면 어떤가. 그냥 주는대로 받아! 이것들아~~~


그러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문제의 원인으로 흘러갔다. 우리가 낸 결론은 구성원에게 의사결정 권한이 없고, 그러다 보니 안건을 뽑고 논의를 진행하는 경험과 역량이 딸린다는 것이다.


한 참석자는 자신이 회의를 주최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안건 위주로 딱 1시간만 회의를 하기로 마음을 먹었고, 다른 구성원들에게 ‘안건을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다. 한 구성원은 회의 때 업무 공유를 하다가 자신의 고충과 고민을 길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래서 그걸 안건으로 정리해보라고, 같이 문제를 해결해보자고, 안건을 만드느라 업무가 밀리면 그 업무를 조정해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안건은 나오지 않았다.


사실 ‘논의’를 한다는 것은 권한이자 책임 또는 부담이기도 하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의에서는 일단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 때로는 문제 정의, 원인 진단, 대안 모색도 필요하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기 위한 논의에서도 사업의 목적과 목표, 방향, 세부 내용을 정리해야 한다. 보통은 이렇게 먼저 안건을 만들어 회의에 올린 사람이 총대를 멘다.


그런데 우리의 회의에는 그럴 권한이 없다. 실제로 “어차피 권한이 없다. 그냥 의견만 내는 것”이란 말을 회의에서 듣는다. 권한은 팀장에게 혹은 국장이나 대표에게 있고, 이사회나 회원총회에 있다. 때로는 ‘조직적 결정’을 내리는 ‘조직’에 있기도 한데, 조직이 누군지는 아무도 알 수 없으나 적어도 나는 그 조직에 포함되지 않는 것 같다.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데 회의를 하라고?


결국 회의의 본질은 의사 결정이고 좋은 의사 결정을 하려면 권한과 책임이 있어야 한다. 그 권한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좋은 안건을 만들고 의논하는 과정을 일상적으로 하면서 경험과 역량 효능감을 차곡차곡 쌓여야 한다. 아무리 신기하고 재미있는 기법을 동원해도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고, 아무리 자주 많이 길게 회의를 해도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시간도둑일 뿐이다. 회의를 하느라 하루가 다 가면 우리는 야근을 해야 한다. 수당도 못 받는데!!!!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투덜투덜대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이번 모임에서는 안타깝게도 더 나은 회의를 모색하지는 못했다. 좋은 회의 경험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성공 요인이나 공통점을 발견하기에는 경험이 너무 적었다.


대신 더 나은 회의를 모색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러 단체들의 회의체 종류와 형식, 주요 내용, 시간, 효능감을 조사하고, 대안적인 회의 사례도 찾아보는 것이다. 말하자면 ‘연구’인 셈인데, 다들 바빠서 내년에 정말 이런 프로젝트를 시도할 수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다.


그래도 해보고 싶은 일이 생겨서 참 좋다. 피곤해서 자꾸 하품이 나오던 와중에도 가슴이 뛰었다. 이것도 (맛있는 음식, 즐거운 수다와 더불어) 이야기모임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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